최지성 삼성그룹 부회장(미래전략실장)은 2000년과 2001년에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각각 3만주 받았다. 그는 스톡옵션을 행사해 2010년 이후에만 최소 74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10년 동안 삼성전자 주가가 10배 이상으로 크게 오른데다, 애초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스톡옵션을 받았기 때문이다.
임원과 근로자의 보수 격차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커진 것은 임원 보수가 근로자 보수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임원 보수 급증의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최 부회장의 경우처럼 스톡옵션이나 연봉제와 같은 미국식 임원 보상 체계가 재계에 확산됐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이 1993년과 1994년 임원과 일반 직원에게 차례로 연봉제를 도입했지만 외환위기 이전까지 임원 보상 체계의 주류는 ‘연공급 체계’였다. 연공급제는 근속연수에 기반한 보상 체계였던 터라 임원 보상 수준을 낮게 묶는 효과를 가져왔다. 여전히 연공급 체계가 중심인 일본의 경우 최고경영자 등 임원과 일반 직원의 보수 격차는 크지 않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연봉제 등이 도입되면서 그룹별로 상향·하향·다면평가와 같은 임원 개인별 업적평가(KPI) 등 인사평가제도가 촘촘한 그물망을 형성해갔고, 임원 보수도 성과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이기 시작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한 고위 임원은 “연봉제가 전면 시행된 이후 부장과 초임 임원 보수가 두 배가량 격차가 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 대형 카드사의 부사장은 “은행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미국식 인사관리 시스템이 본격 도입됐고, 당시에 현재의 임원 보수 시스템의 근간이 마련됐다. 일반 기업들도 (연공급에서) 성과보상 문화로 바뀌었다. 현재의 보수 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긴 역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회계 투명성 강화 노력도 임원 보수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보상이 양성화되면서 보수가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ㅇ그룹 전직 부회장은 “과거에는 아파트를 임원에게 원가로 제공하거나 협력사 관리권 등 각종 이권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투명 경영 요구가 사회적으로 높아지면서 음성적 보수가 양성화됐다”고 말했다.
한 헤드헌팅 업체의 대표는 “국민은행의 경우 마케팅비로 배정된 예산을 은행장이 판공비(업무추진비)로 사용해왔으나 2001년 김정태 행장 때부터 은행장 연봉에 판공비를 포함시켰다. 은행장 보수가 급격히 올라간 이유”라고 말했다.
외국인 영입 활성화도 임원 보수의 전반적 상승을 가져왔다. 대부분이 외국인 임원과 국내 임원 간 이중 보상체계를 갖추고는 있지만, 고연봉의 외국인 영입 확대가 전반적인 임원 보수 상승 압력을 가져왔다. 한 금융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외국인을 영입하기 위해선 이전 직장 보상 수준을 맞춰줘야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현재 외국인 임원과 국내 임원의 총보상 격차는 1.5~2.0배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한 지붕 아래 있는 탓에 장기적으로는 임원 보수가 전반적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종종 총수 등 대주주 일가의 범법 행위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관계·법조계 인사를 영입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한 예로 2007년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 아들이 연루된 폭력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높은 보수를 주고 고위 법조인을 영입했다. 당시 한화 계열사의 임원(상무)이었던 인사는 “당시 (내부 등급에서) A급 계열사인 한화생명(당시 대한생명) 사장 보수 수준이 4억~5억원이었는데, 당시 영입된 인사는 전무급이었음에도 7억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좀더 주목할 부분은 ‘삼성 효과’다. 일부 그룹들이 임원 보수 책정 때 삼성의 보수 수준을 기준점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4대 그룹의 한 전직 부회장은 “임원 보수 수준은 사기와도 상관이 있기 때문에 타 그룹 보수 수준은 항상 주목할 부분이었다. 특히 삼성의 보수 수준을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2000년대 이후 전자 계열사를 중심으로 이익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임원 보수도 가파른 급증세를 보였다. 또 ‘1명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살린다’ 등의 이건희 회장의 인재관이나 이를 반영한 S급 인재 관리 같은 삼성식 인사관리제도에 따라 다른 그룹의 임원 보수 체계보다는 좀더 유연하고 차등적인 보수 체계가 형성됐다. 그만큼 핵심 임원 보상 수준이 급격히 올라갔다는 의미다.
김경락 류이근 기자
sp96@hani.co.kr
한국 CEO 보상수준 11억2000만원
일본 8억9000만원보다 25.8% 높아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니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보상 수준이 일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겨레>가 입수한 세계적인 기업 인사·재무 컨설팅 업체인 ‘타워스왓슨’ 내부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매출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가 넘는 우리나라 기업의 최고경영자 총보상 수준은 11억2000만원 정도로 조사됐다. 이는 조사 대상 국가인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홍콩, 싱가포르, 멕시코, 브라질, 네덜란드 등에 견줘선 낮은 수준이지만 일본(약 8억9000만원)보다는 25.8%가량 높다.
또 총보상 구성을 보면, 한국은 장기성과급 비중이 37%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15개국 가운데 캐나다(49%)와 미국(46%), 중국(38%)에 이어 한국이 네번째로 높다. 반면 일본은 총보상에서 차지하는 장기성과급 비중이 6%에 그쳐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김환일 전북대 교수(경영학)는 “일본은 호봉제 문화가 매우 강한데다 외국인 임원 비중이 아주 낮기 때문에 총보상 수준과 장기성과급 비중이 낮다”고 말했다.
실제 같은 업종에 속하는 도요타의 경우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지난해 1억8400만엔(약 21억8000만원)을 받았지만, 외국인 최고경영자인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은 9억8800만엔(약 115억원)을 받았다. 김 교수는 “도요타는 1959년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사주 일가가 직원들에게 고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은 총보상 전체 규모는 비교 대상 국가 가운데 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장기성과급 비중은 매우 높다. 이는 향후 총보상 수준도 급격히 올라갈 수 있다고 볼 근거가 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국의 사례에서 이런 사실은 명확히 드러난다.
캐롤라 프리드먼 미국 보스턴대 교수(경영학)와 더크 젠터 스탠퍼드대 교수(경영학)가 2010년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기본급 수준(2000년 화폐 가치로 조정)은 1992년부터 2008년까지 큰 변화가 없었으나, 스톡옵션과 스톡그랜트와 같은 주식보상에 근거한 장기성과급은 6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총보상 수준이 두 배 정도 상승했다. 김기령 타워스왓슨코리아 대표는 “기본급이나 단기성과급은 속성상 일반 직원 등과 대비해 큰 폭의 격차를 줄 수 없다. 반면 장기성과급은 외부에서 정당성을 검증하기가 쉽지 않은 특징 때문에 총보상 수준을 급격히 확대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고 말했다.
김경락 류이근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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