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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청계산 눈썰매장 저지의 교훈…“예측조사 독립성 보장하라”

등록 2013-11-05 20:17수정 2013-11-05 22:15

[부풀려지는 SOC 수요예측] ⑤ 예측 오류 개선 방법은

휴일에는 하루 6만명 이상이 찾는다는 청계산이 지금의 모습을 잃을 뻔한 적이 있다. 1995년부터 서울대공원(현 서울랜드)의 관람객이 줄자, 대공원관리사업소는 공원시설 보수·증설을 꾀하면서 1998년에 무려 1945억원을 투입하는 장기종합발전계획을 마련했다. 비수기 이용객 확보 방안으로 대규모 눈썰매장을 짓겠다는 계획도 포함시켰다. 그 위치가 청계산이었다.

서울시는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두 차례 수정된 계획에 대한 타당성 분석 및 민자사업 개선검토 용역을 지금의 시 산하 서울연구원에 맡긴다. 이 연구는 변창흠 박사(현 세종대 교수)의 손으로 갔다. 그는 심각한 환경훼손 등을 이유로 눈썰매장 건설에 부정적이었다. 과천 시민들도 생태계 파괴를 우려해 반대했다. 그러자 서울시에서 난리가 났다. 담당 국장이 세 번이나 그를 찾아왔다. 다짜고짜 결론을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변 교수는 당시 서울대공원관리사업소장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용기있는 젊은이네. 용역 발주처와 수행기관이 싸우는 건 처음 봤다.” 결국 청계산에 눈썰매장이 들어서지 못했다. 연구원이 버티지 않고 발주처인 서울시의 요구에 순응했다면, 청계산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등산객을 맞고 있을 것이다.

사실 발주처의 요구를 용역기관이 수용하지 않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발주처가 수요예측 및 타당성 분석을 하는 기관의 인사나 돈줄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예측을 수행하는 기관이 발주처의 요구에 맞춰 수요를 부풀리고 후한 타당성 평가를 내리는 원인도 바로 이러한 구조적 종속성에 있다.

이때문에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대형 공공사업의 과다 수요예측을 막기 위해서는 수요예측이 포함된 타당성 분석 및 이를 검증하는 기관 및 연구원의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현수 중부대 교수는 “국가권력이나 민간자본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예측 전문기관 및 전문가의 독립성이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랏돈이 3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수행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의 경우, 그 책임자로 지금처럼 케이디아이 원장이 아니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인사를 임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국회 추천 인사가 아무래도 공공사업을 밑어붙이려는 청와대나 정부 부처, 여당 등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연구원, 서울시 압력 받고도
환경훼손 이유 끝까지 버텨내

KDI 공공투자관리센터 책임자
여야 합의로 추천해 뽑을 필요

수요예측 실명제로 책임 강화
복수기관 예측 비교 시스템도

한 발 더 나아가 공공투자관리센터 등과 같은 전문기관을 아예 행정부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변창흠 교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사업성 평가와 감사 업무가 모두 행정부 관할 아래 있기 때문에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성 평가기구를 행정부와 독립적인 기구로 설치하거나, 감사기구를 미국 회계감사원(GAO)처럼 예산 관리 차원에서 국회 산하에 설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변 교수는 이들 기관 수장의 임기를 충분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신분의 불안정성과 외부의 잦은 권력 교체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고 소신껏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문기관의 독립성은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세금 낭비를 초래했을 때 분명한 책임을 지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동반돼야 한다. 연구원 개개인의 윤리와 양심에만 의존할 순 없다. 이때문에 부실한 수요예측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기관 연구원들도 이런 처벌조항을 근거로 외압을 거부할 명분을 키울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세금을 축내온 우면산 터널 사태의 재발을 막겠다며 민자사업 교통수요를 부실하게 예측한 용역자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후 서울시는 계약서에 용역 수행자의 민형사상 책임 소재를 명기하도록 했다.

지난 7월 개정된 건설기술관리법도 수요예측과 이용실적 차이가 30% 이상이면, 발주청이 용역업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 여부를 조사’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고의나 중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문병호 민주당 의원은 “수요예측을 부풀려도 사후 책임추궁이 없으니 되풀이되는 것이다. 수요예측과 이용실적 격차가 일정 퍼센트(%) 이상 나 책임을 물어야할 때 ‘고의성이나 중과실이 아니다’라는 입증 책임을 연구기관이 지도록 법적, 제도적 책임 추궁을 강화하는 입법을 준비중에 있다”고 말했다. ‘정책 실명제’처럼 사회간접자본 투자 사업의 입안자와 추진자의 실명도 일반에 공개돼야 한다는 것도 문 의원의 생각이다.

폐쇄적인 수요예측의 투명성도 높여야 한다. 지금은 교통수요 추정시 사용한 통행량 자료, 관련 개발계획의 반영 정도, 사용한 주요 변수의 내용 등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한국개발연구원의 예비타당성 보고서는 공개되지만, 지방자치단체 등이 민간 사업자와 협약을 체결할 때 맺은 수요예측 보고서는 접근하기 어렵다. 대부분 예측 결과만 제시할 뿐이다. 이때문에 외부의 검증도 어렵다.

김강수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장은 ‘에스오시 투자의사결정 합리화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가칭 ‘교통수요 검토위원회’나 자문 형식의 기구를 통해 예측된 교통수요의 추정 결과를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외부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도로, 철도, 다리 등을 짓는 데 사업 추진에서 완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재수요예측’을 제도화해 다양한 환경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복수의 기관이 예측을 수행하도록 해 경쟁을 시키면 투명성을 높일 수도 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예비타당성 조사 인력을 늘리고, 가능하면 예비타당성조사 수행 주체도 복수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투자관리센터를 일정 규모 이상의 광역 자치단체에 하나씩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공공투자관리센터가 국가 단위 공공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있지만, 지방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사업들은 상대적으로 검증이 허술하다. 센터 운영에 어느 정도 돈이 들겠지만, 광역 자치단체마다 수조원의 예산이 사회간접자본에 투입되는 만큼 비용 이상의 예산 낭비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 차원의 공공투자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서울공공투자관리센터를 설립했다. 이런 경우에도 센터의 수요예측 결과가 시·도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 있는 만큼 조례 등을 통해 센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끝>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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