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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가습기살균제 피해, 유독물 용도제한 안한 국가의 책임”

등록 2016-04-22 19:18수정 2016-04-22 22:26

애초 항균카펫 첨가제로 심사받아
용도변경때 규제 없어 피해 키워
유족들, 국가 손배소 패소뒤 항소
시민단체선 집단소송 추진 나서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의 원래 용도가 항균 카펫이나 농장 소독용이라는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면서 이런 독성 물질을 규제하지 못한 정부의 법적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는 ㈜유공이 1996년 개발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다. 22일 당시 유공이 정부에 제출한 유해성 심사 신청서를 보면, 용도는 “항균제로서 항균 카펫 등에 첨가제로서 첨가된다”고 돼 있다. 주의사항으로 “작업자의 노출 최소화를 위해 충분히 환기할 것”, “흡입시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길 것”을 명시하고 있다.

중소기업 세퓨가 만든 가습기 살균제 원료는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다. 2003년 유해성 심사 신청서는 양계농장 소독, 박테리아나 곰팡이로부터 농산물 보호, 문서·고무·목재 보존을 열거했다. 정부는 신청서를 근거로 이 물질들을 ‘유독물이 아닌 화학물질’로 각각 고시했다.

용도대로라면 이들 물질은 인체에 직접 유입될 가능성이 낮았지만 가습기 살균제로 쓰여 호흡기를 통해 폐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됐다. 22일 전문가 기자회견에서 한국방송통신대 박동욱 교수(환경보건학)는 10㎡ 넓이 방에서 8시간 가습기 살균제(20㎎)를 사용하면 매 시간 환기를 해도 방 안 살균제 농도가 1122㎍/㎥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기 중 미세먼지 기준(50㎍/㎥)의 22배 이상이다.

결국 146명(정부 1·2차 조사)이 목숨을 잃었지만, 정부는 당시로서는 유해성 파악이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일부 제품에 KC마크(안전·보건·환경·품질 등의 국가 통합 인증마크)까지 부여했다. 환경부는 “용도를 바꿀 때 다시 유해성 심사를 해야 했지만, 당시 그런 제도까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일단 정부 입장을 받아들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을 원료로 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 판결했다. 정부의 유해성 심사가 “법령 규정에 따른 것으로 보이고, 당시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유해물질로 지정해 관리하지 않은 게 주의의무 소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논문을 통해 판결을 반박했다. 수입업자가 유해성 심사 신청서에서 제품 배출 경로로 가습기와 비슷한 ‘스프레이 혹은 에어로졸 제품’을 명시해, 당시 법규에 따르더라도 흡입독성에 대한 유해성 심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또 “물질의 독성은 노출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독성학의 기본 상식으로, 용도 변경시 유해성 재심사는 국민의 생명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했다. 이어 “용도 변경시 유해성 재심사제를 두지 않은 국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특정 용도를 전제로 유해성 심사를 하면서도 용도를 제한하지 않고 유독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고시한 국가에 중대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사망자 유족들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피해자들의 국가 상대 소송은 1심이 진행 중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4일 총회를 열어 업체들과 국가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 원고를 모으기로 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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