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만으로 유해화학물질 영업 근거 마련
환경단체 “한국, 화학물질 시험장 될수도”
‘중소기업 등의 부담 경감’을 이유로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규제를 완화하는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환경단체들 사이에선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며, 안전에 대한 위험을 사회로 떠넘긴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화평법 개정안은 기업 등이 제조·수입할 때 환경부에 등록해야 하는 신규 화학물질의 연간 취급량 기준을 100㎏에서 1t으로 높여, 등록 기준을 완화한 것이 핵심이다. 또 화관법 개정안은 유독물질을 위험도에 따라 세분해 규제를 차등화하는 한편, 인체만성유해성물질만 취급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정기검사 의무를 면제하고, 허가제로 운영 중인 유해화학물질 영업을 취급량 등에 따라 신고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화평법 등은 2011년 드러난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등으로 화학물질 안전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진 데 힘입어 2013년 제정됐다. 화평법 제정 당시에는 신규 화학물질은 양과 상관없이 모두 등록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2018년 등록 기준이 연간 취급량 100㎏ 이상으로 완화된 바 있다. ‘등록을 하기 위해 인체와 환경 등에 대한 유해성 시험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지나치게 부담이 된다’는 업계의 호소에 따른 것이다.
기업들은 이런 규제 완화에도 ‘여전히 경쟁국들에 비해 과도한 규제’라며 추가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환경부는 이런 요구에 대해 “화학법령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2019년 8월13일 환경부 보도설명자료)이라며 반대해왔으나, 결국 이번에 등록 기준을 유럽연합(EU) 및 일본과 같은 수준인 1t으로 훨씬 더 완화했다.
대규모 규제 완화가 이뤄진 건,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이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회의에서 “투자를 막는 ‘킬러 규제’를 걷어내라”며 화평법과 화관법을 지목한 데 따른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등록 기준이 같아도 유럽과 우리의 등록 요구 자료가 달라 우리나라가 신규 화학물질의 ‘테스트 베드’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의 화학업체들이 개발한 신규 화학물질을 등록 자료를 준비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우리 쪽에 먼저 등록해 시험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강홍구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활동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 살생물질 등이 비교적 엄격하게 관리돼왔는데, 이번 법 개정이 자칫 기업들에 생활화학제품 등에 대한 관리를 좀 느슨하게 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주게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