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12주기인 지난 8월31일 오전 서울역 들머리 계단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눈물: 유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옥시(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천식이 악화한 피해자에게 제조사가 위자료를 줘야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서보민)는 13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ㄱ(17)씨의 어머니 신아무개씨가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옥시와 원료제조사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가 공동해 원고에게 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신씨는 관리 책임을 물어 정부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했지만 정부에 대한 청구는 기각됐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ㄱ씨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됐고 노출 이후 기존 천식 질환이 악화됐으며,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천식 사이에 역학적 상관관계가 있음이 확인된다”며 “옥시와 한빛화학이 다른 원인으로 인해 (ㄱ양의 천식)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므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원고의 천식 질환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법적으로 질병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때는 △원인이 결과보다 먼저 일어나는지 △원인에 노출이 많아짐에 따라 결과도 심각해지는지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확인되는지 등을 확인한다.
법원은 ㄱ양이 기저질환으로 천식을 앓고 있었지만 2009년 4월부터 2013년 8월까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면서 증상이 더욱 악화됐다고 봤다. 2017년 1월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제정 후 환경부 피해구제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천식이 발생하거나 천식이 악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ㄱ양에게 구제급여를 줬지만 옥시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와 판매의 책임이 있는 기업들이 피해 배상을 하지 않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이 폐 섬유화(폐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와 폐 증상이 아닌 기관지 천식 발병·악화에 대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의 배상책임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김영환 환경보건시민센터 위원은 한겨레에 “정부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천식이 발병·악화할 수 있다고 진즉 판단해 구제했지만 옥시는 대부분의 질환에 대해 모르쇠로 버텨왔다”며 “이번 판결로 인해 민사적으로 배상을 받지 못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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