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국회앞 시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인 김덕종씨(왼쪽)와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오른쪽)이 9일(현지시각) 덴마크 국회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알리고 있다. 덴마크는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세퓨’의 원료공급사인 케톡스가 있는 국가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제2 옥시 피해 막으려면
유해제품 손해배상 엄중부과
한국 살균제 위자료 5천만원 수준
징벌적 손배 도입 절실
집단소송제도 확대 적용 목소리 커져
유해제품 손해배상 엄중부과
한국 살균제 위자료 5천만원 수준
징벌적 손배 도입 절실
집단소송제도 확대 적용 목소리 커져
미국 미주리주 지방법원은 지난 3일 세계적 기업인 존슨앤존슨의 제품을 사용해 난소암에 걸린 60대 여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업체가 5500만달러(약 643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피해 보상 성격의 배상금 500만달러에 그 10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액 5000만달러를 합친 금액이다. 반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사망 포함 500명을 넘고,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 5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은 지금껏 제대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번처럼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가해자의 죄질이 무거운 경우 배상 책임을 신속하고 무겁게 물릴 수 있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집단소송제는 기업의 잘못으로 다수가 피해를 입은 경우 일부가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별도 소송 없이 함께 피해를 구제받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죄질이 안 좋을 경우 실제 손해보다 훨씬 큰 규모로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인 오영중 변호사는 10일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눈이 먼 피해자가 설령 소송에서 이겨도 현 사법체계에서는 배상금 외에 위자료가 5천만원 수준”이라며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법 위반자(기업)에 비해 약한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소비자)의 대항력을 키워줌으로써 배상을 보다 쉽게 받도록 하고 동일한 위법행위가 반복되는 것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어서 미국 등에서 시행 중”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등 16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옥시 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하면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촉구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증권 분야에 국한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했으나 소송 요건이 까다로워 지금껏 소송 실적이 6건에 불과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2011년 이후 하도급법의 대기업 불공정행위 등에 도입됐는데, 사법부의 소극적 태도 등으로 적용 사례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한 두 제도의 도입을 약속했으나 기업의 반발을 이유로 지키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여러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서영교 의원은 기업의 제조·광고·담합·판매 등에서의 불법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에 대해 집단소송제를 적용하는 소비자집단소송법을 대표발의했다. 우윤근 의원은 민사소송법에 집단소송 특례를 도입하는 집단소송법을, 김기준 의원은 증권집단소송제의 소송 요건을 완화한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백재현 의원은 제조물 결함 피해에 최대 12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정부·여당과 경영계가 기업 부담 증가와 소송 남발 우려를 이유로 반대해 19대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하지만 야당들이 4·13 총선에서 두 제도의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해, 여소야대로 짜여진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감을 낳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위평량 연구위원은 “집단소송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입증책임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쪽으로 전환하고, 법원 명령으로 가해자가 갖고 있는 증거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는 손해액의 최대 10배까지 대폭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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