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 예상밖 급등에 혼란
공공인프라 투자 확대 기대감도
“섣부른 판단 위험” 신중론 대세
공공인프라 투자 확대 기대감도
“섣부른 판단 위험” 신중론 대세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이후 한국 정부는 다양한 층위에서 대책 회의를 여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금융시장 상황 등으로 사태 판단에 어려움이 커지면서 “일단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정부 내에 확산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열어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과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기재부는 회의 뒤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을 고려할 때 미국 경제정책 관련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세계 경제도 불확실성 확대,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교역 위축 등으로 성장세 둔화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전날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공개했던 정부의 상황 인식과 큰 틀에서 차이가 없다.
그러나 복수의 정부 관계자 말을 들어보면, 이날 새벽 마감한 뉴욕 증시 결과가 예상과 달리 상승세로 나오면서 정부 내 대응 기조와 대외 메시지를 어떻게 가져갈지를 두고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기재부의 한 간부는 “트럼프 당선도 예상과 달랐지만, 간밤의 뉴욕 증시 상황도 예상을 벗어났다”며 “어떤 해석을 해야할지 다양한 의견이 (정부 내에) 개진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상황 판단과 배경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선 트럼프 후보 당선을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주장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당선자가 공약으로 밝힌 핵심 정책인 ‘보호무역주의’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다듬어질 가능성이 큰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부문에 대한 1조달러 규모의 재정지출 확대나 석유산업 지원, 저금리 기조 유지 등 성장 친화적인 공약들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는 견해다. 기재부의 한 과장은 “트럼프에 대한 월가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란 이야기가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며 “대선 과정에서는 트럼프의 언행 탓에 ‘불확실성 확대’ 를 더 경계했다면, 당선 뒤엔 친성장 공약에도 관심을 갖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런 미묘한 인식 변화는 유일호 부총리의 입을 통해 공식화되기도 했다. 유 부총리는 “미국의 금융규제 완화나 인프라·신산업 투자 확대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존재한다. 특히 당선자 공약 중 공공인프라 투자 확대 등은 기회요인이 되는 만큼 관련 동향을 조기 파악해 우리 기업 수주 지원에 (정부가) 나서겠다”고 말했다. 최상목 1차관도 이날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상황 인식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경제부처 수뇌부에선 여전히 현 단계에선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중심을 이룬다. 기재부의 핵심 간부는 “오늘 부총리를 통해 ‘기회 요인’ 관련 메시지가 나가긴 했으나, 그게 전부이거나 핵심 메시지인 것은 절대 아니다. 당선 뒷날 개장하는 뉴욕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위기 관리’가 다시 정부 메시지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현재 트럼프 당선자의 향후 행보 자체가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먼저 그 행보를 예단해 대응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외부에선 정부가 빨리 답을 내놓지 않는다고 답답해할 수는 있으나, 현재는 미국 쪽 상황과 주변국의 반응을 꼼꼼하게 모니터링하고 소통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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