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5일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마이클 고브 영국 의원이 진행한 <더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칭찬하며, 유럽연합 해체를 부추기고 독일을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유럽연합(EU)은 독일의 도구”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극찬하며, 다른 유럽 국가들도 영국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유럽 분열을 부추켰다.
트럼프 당선자는 15일(현지시각)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영국 <더타임스>, 독일 <빌트>와의 연쇄 인터뷰에서 유럽연합 해체를 전망하는 한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비판했다.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2차대전 이후 서방이 주도한 질서의 주축인 미국-유럽의 대서양 양안동맹 균열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영국 전 법무장관인 마이클 고브 의원이 진행한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유럽연합은 기본적으로 독일의 도구”라며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도 (유럽연합을) 떠날 것이라고 믿는다”며 “난민들이 유럽 각 지역으로 계속 쏟아져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에 분노하기 때문에 유럽연합의 통합을 유지하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뒤 영국과의 양자 무역협상에 대해 “절대적으로, 아주 신속하게” 체결할 것이라고도 말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를 적극 도울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는 또 <빌트>와의 회견에서 메르켈 총리에 대해 “불법 이민자들을 독일로 들어오게 하는 아주 재앙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는 이밖에 독일 자동차업체 베엠베(BMW)가 멕시코에 공장을 지어 미국으로 자동차를 수출하면 미국은 35%의 국경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연합은 독일의 도구”,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대단한 일”, “다른 나라들도 (유럽연합을) 떠날 것”, “앙겔라 메르켈은 재앙적 실수를 저질렀다”, “메르켈에 대한 신뢰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등은 유럽대륙의 유럽연합 주도 국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유럽연합은 해체돼야 하고, 독일 등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더타임스> 및 <빌트>와의 회견 내용은 크게 몇 부분으로 요약된다.
첫째, 유럽연합은 존속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브렉시트는 훌륭한 일로 끝날 것이다”고 말했다. 난민사태를 초래한 유럽연합을 유럽 국가와 유럽인들에게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과 나라들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원하고, 영국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둘째,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독일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메르켈 독일 총리의 관대한 난민정책을 “재앙적 실수”, “정말로 큰 실수” “아주 중대한 실수” 등으로 거듭 비판했다. 유럽연합이 독일의 도구라고도 했다.
그는 메르켈 총리에 대한 자신의 신뢰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을 나란히 놓고는 “두 사람를 신뢰하기 시작했다”면서도 “그러나 그게 얼마나 갈지 두고보자, 아마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유럽 맹방인 독일 지도자와 ‘가상 적국’인 러시아의 지도자를 모두 잠재적으로 문제많은 동맹이라고 나란히 놓은 것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적했다.
셋째, 유럽과의 동맹관계 조정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거듭 밝혔다. 그는 유럽 국가들과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해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한물갔다”고 비판했다. 단지 “5개 국가만이 그들이 해야할 것을 내고 있다”고 말해, 나토 동맹국의 대부분 회원국들이 방위비 분담을 하지 않고 있는데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푸틴이 핵무기를 감축하는데 동의한다면 러시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지지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연합 잔류국 사이의 틈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뒤 즉각 영국과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하겠다고 강조하는 한편 유럽연합 시민들의 미국 입국 제한과 베엠베 등 독일 기업에 대한 중과세 부과 등을 밝혔다.
트럼프가 밝힌 이런 입장들은 한마디로 자신의 반세계화 노선의 일환이다. 유럽연합 자체가 트럼프가 거부해온 자유무역협정, 경제통합, 관대한 이민 등 세계화 노선을 구현한 최대 산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지원하며, 유럽연합 자체의 해체까지도 바라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연합을 주도하고 지탱하는 독일과 메르켈 총리 흔들기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메르켈의 총리 4선 도전에 대해 “나는 그를 몰라서, 내가 누구를 지지할지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날 <더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정적인 마이클 고브 의원과 했다. 브렉시트 강경파인 고브에 힘을 실어주고, 신중파인 메이를 견제하려는 의도다. 트럼프는 자신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유럽의 지도자들까지 흔들기를 한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반유럽연합 노선이 가져올 미국과 독일 등 유럽 동맹국과의 관계 악화, 더 나아가 대서양 양안동맹의 균열을 미국이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의 대부분 의원과 지지자들도 미국에게는 유럽과의 대서양 양안동맹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의 주축이라는데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앤서니 가드너 유럽연합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주 미국이 “브렉시트 치어리더”가 되는 것은 “어리석음이 극치”라고 비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