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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제도정치의 실패가 ‘광장 민주주의’ 불렀다

등록 2016-12-21 10:56수정 2016-12-26 08:26

왜 매번 광장에 섰나

4·19 5·18서 6월 항쟁까지
박정희·전두환 등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요구하는 주권적 행동

87년 승리로 민주화 이루었지만
‘후진 정치’로 결손 민주주의 상태
더 나은 민주주의 위해 또 광장에

“선거 통해 대표 뽑는 룰 제외하면
한국 민주주의 사실상 허물어져”
‘높은 민도’ 반영못해 주기적 폭발

“우리의 유산은 유서 없이 남겨졌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르네 샤르가 남겼다는 말처럼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느닷없이 남겨진 유산이었는지 모른다. 오랜 봉건시대와 식민통치 끝에 ‘느닷없이 남겨진’ 민주주의는 숱한 위기와 고통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수렁에서 건져 올린 건 언제나 광장에 모인 국민이었다.

우리 국민은 주기적으로 광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높은 민도’를 ‘후진 정치’가 따라잡지 못한 탓이다. 따라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억압하기 일쑤였다. 1960년 4·19 혁명과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서울의 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국민을 짓누르는 독재정권 타도투쟁인 동시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주권적 행동이었다. 광장 민주주의를 열어낸 주체와 요구 조건, 시대를 구성한 경제사회적 조건은 각각 달랐지만, 그때마다 국민의 요구는 ‘민주주의’ 그 자체로 수렴됐다.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자각이 현실 정치에서 배신당할 때 누적된 분노는 주기적으로 광장으로 표출돼 왔다”며 “광장 민주주의의 표출은 그때마다 역사의 물꼬를 돌려왔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근현대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개혁의 요구는 늘 민주주의와 함께했다. 한울님 앞에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강조한 동학의 개혁성이 대표적이다. 실제 동학농민운동은 자치기구인 ‘집강소’의 설치를 주장하며 민주주의적 요구를 분출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주도한 만민공동회는 근대적 의미의 의회를 개설하려고 시도했다. 3·1 운동부터 임시정부 수립까지 근대사를 관통하는 민주주의의 역사성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대사에서도 꾸준히 광장 민주주의를 실현한 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사회교육)는 “근대적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인식은 외부로부터 이식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내재적으로 발전해 왔다.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된 민주주의 의식이 독재정권 등 제도적 한계와 만나 광장 민주주의의 에너지로 표출됐다”고 설명했다.

광장 민주주의가 발현되는 계기는 누적된 분노의 폭발이었다.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4·19 민주혁명), 와이에이치(YH)무역 농성·김영삼 국회의원 제명(부마 항쟁), 12·12 사태로 대표되는 신군부의 등장(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민주주의를 무시한 독재적 행태는 어김없이 국민적 반발을 불렀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이 국민의 뜻을 배신하고 법치주의 각종 제도가 오작동하는 상황에서 국민은 집단적 주권 행위에 나섰다”며 “광장 민주주의 너머에 대한 고민은 제도정치의 실패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력과 광장의 갈등 원인을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한 우리 역사의 한계에서 찾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권력자들은 일제, 미군정 등 외생 권력으로부터 통치권을 넘겨받는 형식으로 권력을 획득해 왔기 때문에,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적 대표성을 획득하는 민주주의의 체계화 과정이 생략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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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동안 제도정치와 갈등을 벌이던 광장 민주주의는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라는 꽃을 피웠다. 전두환 정권은 이전의 독재정권과 마찬가지로 파시즘적 폭압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동안 경제성장과 대학진학률 상승으로 중산층과 화이트칼라라는 민주화의 토대가 형성됐다. 이들은 ‘넥타이 부대’라는 이름으로 반독재 투쟁의 ‘전위부대’임을 자임하던 대학생, 재야세력을 뒷받침했다. 사회적 주체로 성장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6월항쟁에 이은 87년 노동자 대투쟁(7~9월)을 통해 독자 정치세력화에 나섰다. 1987년 6월의 광장은 ‘6·29 선언’을 통한 직선제 개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민주노조를 정치적 주체로 격상시켰다. 광장 민주주의의 주체가 현실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한 단계 성장했다.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 등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이후, 광장 민주주의는 저변을 넓히기 시작했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는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과 함께 한국과 미국의 대등한 관계 설정을 요구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서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자부심이 바탕이었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부터 광장은 다시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힘겨운 내부 투쟁으로 돌아선다. 2004년의 광장은 국민의 대표를 지키기 위한 ‘방탄성’ 광장이었다. 지배적 언론 환경을 등에 업은 제도정치권의 보수 야합이 6월항쟁의 성과인 직선제로 뽑힌 국민의 대표를 무리하게 제거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2004년의 광장이 맞섰던 대상은 퇴행적이었다. 이때부터 우리 민주주의는 퇴행 위기에 지속해서 노출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건강과 안전이라는 생명권 요구에서 출발했지만, 내용적 측면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불통 정치,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리고 민주화 30주년을 한 해 앞둔 2016년, 민주주의가 권력 핵심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세대가 분노하고 광장에 나선 이유다.

권력집단에 의해 민주주의가 희롱당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 민주주의가 실은 허울만 남은 ‘결손 민주주의’였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앙대 신진욱 교수(사회학)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5가지 요소로 △선거체제 △정치적 기본권 △시민적 자유 △권력분립 △선출된 대표에 의한 지배를 들고, 이 범주에 따라 한국 사회를 진단한 결과 심각한 결손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선거의 공정성이 위협(국정원 대선개입)받았고, 정치적 기본권은 제한(민간인 사찰, 언론 장악)됐다. 또 시민적 자유는 위축(공안몰이, 카카오톡 감청)됐고, 권력분립(여당과 사법부 장악)이 실종됐으며, 급기야 국민이 뽑은 대표가 직접 통치한다는 정치적 대표성(최순실 비선 실세)마저 무너졌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다는 게임의 룰을 제외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허물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민주주의의 결손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압축된 정치적 에너지가 일시에 폭발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는 이렇게 ‘결손’된 민주주의를 재건하기 위해 다시 열린 광장이라는 뜻이다.

군부독재와 산업화시대를 겪지 않은 후기산업화 시대 이후 시민들의 정치적 진보성에 주목하는 이들은 폭발적인 광장 민주주의가 우리 민주주의의 특질처럼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고 예상하기도 한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가치관조사 결과를 보면, 산업화시대 이후 출생자(1990년생 이후)들의 탈물질주의 경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탈물질주의자들은 선거 참여, 조직적 동원 등 제도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도가 낮은 대신, 시민의 직접행동에 대한 호응도가 매우 높다. 정치에 무관심한 듯 보이지만 누적된 분노를 광장에서 쏟아낼 가능성이 높은 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후기산업화 이후 세대인 1990년대 출생자들을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원대 정상호 교수(사회교육)는 “구태의연한 정당 조직과 선거를 위한 동원 등으로 상징되는 대의 민주주의는 탈물질화 경향을 가진 젊은 세대의 정치적 욕망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젊은 세대를 정치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정치의 최대 문제는 권력에 의한 동원을 반복하는 산업화시대 정당정치와 이를 거부하고 있는 후기산업화 시민들의 갈등에 있다는 인식이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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