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보호무역 정책으로 통상 환경이 악화할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의 이점을 노리고 멕시코에 생산시설을 설치한 기업들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자가 실제로 ‘국경세’(border tax) 도입 등을 실천에 옮길 경우 멕시코 공장을 보유한 기아차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최근 멕시코에 공장을 늘리려는 일본 도요타에게 “국경세를 물리겠다”고 압박을 가한 바 있다. 기아차는 지난해 연간 40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멕시코 공장을 완공했다.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도 멕시코에 공장이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앞으로 변화할 미국의 통상정책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멕시코는 포드 등 많은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거점을 갖고 있어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부품의 최대 수입국 또한 멕시코”라며 “국경세가 생기면 멕시코 자동차산업이 타격을 입겠지만 동시에 미국 자동차 부품산업 역시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과도한 보호주의 조처가 말 그대로 이행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다. 현대차는 17일, 5년간 31억달러(약 3조6천억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전격적으로 내놓아, 트럼프 행정부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을 낳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가능성도 부담이다. 재협상 요구가 나올 경우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가는 자동차 수출 등에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 현대차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은 전체 생산량의 7%, 기아차는 11%에 이른다.
멕시코에서 자동차강판 공장을 가동중인 포스코는 미국 직접 수출 비중이 13% 정도로 크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주요 자동차업체들의 대미 수출이 위축되면 자동차강판 판매가 줄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하반기에 개시되는 도금·냉연·열연 제품의 연례 재심에서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전문 인력을 보강하는 등 미국 현지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부가 철강업계와의 긴밀한 공조와 정보 공유로 트럼프 행정부와 접촉할 때 당면 과제 해결에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봉을 피하는 한 방법은 현지 생산시설을 늘려 무역 제한을 피하고, 미국 내 일자리를 늘려 트럼프 행정부에 호응하는 것이다. 전자업계에서도 미국 투자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미국시장 자체가 커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전략을 짤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성진 엘지전자 부회장도 “미국 생산에 대한 고민을 쭉 해왔다”며 “금년 상반기 중에는 (계획이) 정리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홍대선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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