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한국은행이 6년5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상에 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14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번 기준금리 인상이 저금리 장기화로 급증해 한국 경제의 잠재적 뇌관이 된 가계부채 증가를 어느 정도 억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일반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특히 취약계층의 가계부채가 부실화할 위험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는 지난 3년간 362조7천억원(34.3%) 불어나며 3분기 말 1419조1천억원에 달했다. 연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6월 말 현재 155.0%다. 한 해 동안 번 돈을 꼬박 모아도 원금 3분의 2를 겨우 갚는 수준이다.
이번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이 대출금리에 반영되면 늘어나는 가계의 이자 부담은 2조3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은이 예금은행 잔액기준 변동금리 대출 비중(65.8%)을 적용해 추산한 수치다. 통계청의 올해 가구추계(1952만가구)를 고려하면 가구당 늘어나는 이자 부담은 18만1725원이다.
기준금리 인상이 이미 시장금리에 반영됐기 때문에 대출금리도 크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내년에도 한두차례 정도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따라서 시장금리가 다시 움직이고 대출금리 상승이 뒤따르는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가산금리도 대출금리를 올리는 요소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자금조달 비용인 코픽스(COFIX)나 금융채 이율에 금리를 가산해 결정한다. 그동안 은행들은 시장금리가 올라갈 때 가산금리도 함께 올려 대출금리 인상 폭을 높여왔다. 그 결과 2~3%대이던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5년 고정대출)가 최근에는 5%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0일 “금융회사가 기준금리 인상을 계기로 실제 시장금리와 조달금리 상승과는 무관하게 대출금리를 과도하게 인상하는 일이 없도록 금융감독원과 함께 면밀히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출금리 상승이 본격화되면 한계가구와 영세 자영업자들이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의 분석 자료를 보면, 가계부채가 부실해질 수 있는 위험가구는 지난해 3월 말 기준 전체 부채 보유가구의 11.6%에 달하는 126만3천가구다. 이들의 금융부채는 전체 금융부채의 21.1%인 186조7천억원이나 된다.
이 가운데 자산을 처분해도 빚을 다 못 갚는 고위험가구(한계가구)는 전체 부채 보유가구의 2.9%인 31만5천가구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이들의 가계부채가 94조원으로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앞으로 금리 상승이 이어지면 부채를 갚지 못하는 고위험가구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출금리가 0.5%포인트, 1%포인트 오를 경우 고위험가구가 각각 8천가구, 2만5천가구 늘어날 것으로 한은은 추정했다.
한계가구의 셋 중 하나가 자영업자다. 약 150만명의 자영업자가 빚을 지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음식점, 소매업 등을 주로 하는 ‘생계형 자영업’이 48만명으로 38조6천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1인당 8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지만 연소득은 1600만원에 그쳐 연체 가능성이 크다고 금융위원회는 진단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가계부채 가운데 상당수가 생계형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야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 인상에 따른 정부 대책이 이들 취약 계층에 집중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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