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 둘째)가 물을 마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혁신성장에 대해 우리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에서 더욱 분발해달라”고 주문한 발언이 파장을 낳고 있다. 최근 ‘경제 컨트롤타워’의 주도권을 둘러싼 청와대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갈등에 대해 대통령이 교통정리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시장에 끼친 영향을 두고 장하성 정책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경제 참모진과 다른 견해를 내놓으면서 파열음을 빚었다. 이런 갈등은 최근 석달 연속 고용부진 통계가 이어지면서 촉발된 측면이 있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올해 초 크게 올린 최저임금 정책의 부작용이 아니라는 쪽에 섰고, 김동연 부총리는 ‘속도 조절론’을 앞세운 것이다. 급기야 30일 김 부총리가 전날 열린 긴급경제점검회의에서 ‘다양한 이견’이 있었음을 밝히면서, 청와대 주도의 경제정책 기조에 사실상 반기를 든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이날 ‘혁신성장은 부총리 중심’이란 발언은 이런 주도권 갈등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부총리에게는 혁신성장을 맡기고, 전반적인 경제정책의 주도권은 계속해서 청와대가 쥐고 간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큰 탓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 1년이 지나도록 혁신성장에선 아직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부총리 간 갈등은 29일 문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경제점검회의를 거치며 한층 고조됐었다. 당일 회의가 끝난 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앞으로 장하성 정책실장이 주도하여” 경제 전반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회의를 계속 개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장하성 정책실장이 이끄는 모양새로 비치면서, 김 부총리 쪽 반발을 키운 것이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1분위 소득 감소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의 활력이 둔화될 조짐이 나타나면서 김 부총리가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장하성 실장이 최저임금과 재벌개혁 이슈는 본인이 키를 잡고 간다는 말을 여러차례 해왔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역할 분담론’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뼈대인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은 서로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런 역할 분담 구조는 삐걱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는 “기재부는 예산, 조세, 대외경제, 공공정책, 일반 경제정책 등을 모두 아우르는 부처인데 그 구실을 혁신성장에 가둬놨다. 증세 등 핵심 이슈에 대해 김동연 부총리 영향력은 ‘원 오브 뎀’(여럿 중 하나)에 그쳤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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