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이 18일 서울 중구 한국재정정보원에서 지출구조개혁단 회의를 주재하고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2020년 예산안부터 사전에 소득 재분배 효과를 분석해, 정책 효과가 큰 사업에 예산을 우선 편성할 방침이다. 올해 들어 저소득가구 소득이 급감하고 소득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향후 재정정책 운용에서도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는 18일 <한겨레>에 “앞으로 재정 지출의 소득 재분배 효과를 분야별·사업별로 분석·예측하는 모형을 개발해, 예산안 편성을 비롯한 정부 재정정책에 반영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에 편성하게 될 2020년 예산부터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는 재정의 소득 재분배 효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만큼, 주요 정부 정책의 소득 재분배 효과를 사전적, 사후적으로 각각 분석해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정책 수립 및 예산 편성에 반영하겠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는 최근 올해 1분기에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한해 전보다 8%나 급감하는 등 소득분배 지표가 더 악화된 것으로 나오자, 정부가 다각도로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 통계청이 가계소득 통계를 더욱 정교화해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와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제도별 재분배 효과는 물론이고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 세목별로도 재분배 효과가 반영된 통계를 만들면, 기재부는 이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향후 기존 제도를 바꾸거나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 재분배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모형을 만들어 정책 수립과 예산 편성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재부 쪽은 “예비타당성조사처럼 각각의 사업에 대해 강한 구속력을 갖지는 않겠지만 전체적인 재정 운용 방향에서 국민과 국회의 구속을 받게 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부터 이런 제도를 도입한 영국은 해마다 재무부가 소득 재분배 보고서를 예산안과 함께 부속서류로 의회에 제출한다. 기재부 담당 간부는 “우선적으로 데이터 기반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개편해 활용하는 방안 등을 통계청, 한국재정정보원 등과 함께 연구 중인데, 국세청 등 관계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기존 예산 편성과정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산안의 바탕이 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은 5년간의 세입과 지출 계획을 통해 재정수지와 국가채무를 관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고, 총사업비 1천억원 이상 규모의 재정사업에 적용되는 예비타당성조사 역시 경제성(비용 대비 편익)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오이시디 최고 수준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바탕이 됐지만, 동시에 국내총생산 대비 세수 비중과 재정지출 규모, 복지 지출 비중 등 재정의 역할이 오이시디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원인으로도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득의 재분배 효과는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 등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소득불평등에 비해 조세지출과 공적이전소득이 반영된 처분가능소득의 불평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2015년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우리나라의 상대 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은 17.7%로 관련 통계가 있는 오이시디 29개국 중 스위스 다음으로 낮다. 하지만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할 때는 13.8%로 11번째로 높아진다. 재정의 빈곤율 개선효과는 22%로 오이시디 평균 60.2%(2014년 기준)의 3분의 1 수준이다. 오이시디 국가에서는 빈곤층 10명 중 6명이 재정 역할을 통해 빈곤을 벗어나는 반면, 우리나라는 10명 중 2명만이 빈곤선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시장에서 소득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를 줄이는 것이 정부 재정의 역할인데, 지금까지 우리나라 재정은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소득 재분배 효과를 사전 분석해 효과가 큰 쪽에 재원을 집중하면, 재정의 효율적 운용도 가능해지고 그동안 부족했던 재정의 역할도 점차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영국 재무부가 발표한 소득재분배 효과 분석 보고서. 조세, 복지 급여 등 재정이 소득에 미치는 효과가 소득 10분위 가구별로 분석돼 있다. 자료 조세재정연구원
지난해 영국 재무부가 발표한 소득재분배 효과 분석 보고서. 정부 임기 동안 추진된 정책에 따라 달라진 총누적효과가 분석돼 있다. 자료 조세재정연구원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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