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간판 대기업의 악용 실태
삼성, 총수 지배력 유지에 활용
삼성물산 합병때 200만주 재단 매입
이사장인 이 부회장 지분 강화
한진, 계열사 지원 ‘우회 통로’
정석인하학원, 대한항공 증자 참여
공익사업 무관한데도 52억 출자
현대차, 일감몰아주기 규제 ‘도피처’
이노션·글로비스 규제대상 되자
정 회장 일가 지분 출연으로 모면
“경영권 승계·사익 편취 등 부작용”
공정위, 특위 통해 제도개선 나서
삼성, 총수 지배력 유지에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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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션·글로비스 규제대상 되자
정 회장 일가 지분 출연으로 모면
“경영권 승계·사익 편취 등 부작용”
공정위, 특위 통해 제도개선 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익법인’들의 운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재벌들이 이윤의 사회환원 및 인재양성과 소외계층·문화예술 지원 등을 목적으로 공익법인(재단)을 설립한 뒤 실제로는 편법으로 지배력을 확장하고 사익을 편취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게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삼성·현대차·한진·금호아시아나 등 대표 기업들까지 이런 짓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 공익법인 운영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일 발표한 재벌들의 공익재단 편법 이용 의심 사례를 보면, 총수 일가는 세금 혜택을 받고 공익재단을 설립한 뒤 이사장 등을 맡아 재단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동시에 본인 지배력을 유지하거나 총수 2세가 출자한 회사 등의 주식을 보유해 정부 규제 등을 피해가는 등 이중 삼중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겉으로는 공익을 위한 활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에 이용되는 것이다.
연매출 300조원이 넘는 삼성그룹은 총수의 지배력 유지에 그룹 소속 공익재단을 활용했다. 삼성에스디아이(SDI)는 2016년 2월 보유중인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 매각에 나섰다. 전년에 끝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새로 생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130만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매입했고, 170만주는 시장에 내다 팔았다. 나머지 200만주는 삼성생명에 딸린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샀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이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하면서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이 흔들리지 않게 됐다. 당시에도 재벌 총수가 지배력 유지를 위해 공익법인을 활용한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이 부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당시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삼성물산 지분 매입을 위해 지출한 돈은 3063억원에 이른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공익사업에 지출하는 돈은 연평균 100억원 수준인데, 설립 목적과 전혀 무관한 사업에 수십배의 돈을 쓴 것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1982년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을 목적으로 설립돼 삼성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공익재단은 재벌이 계열사를 지원하는 ‘우회 통로’로도 이용된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의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진행된 4577억 규모 유상증자에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인 정석인하학원을 이용했다. 정석인하학원은 진에어 등 계열사 5곳으로부터 45억원의 현금을 증여받아, 다음달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52억원을 넣었다. 대한항공은 이전 5년 동안 배당을 하지 않아, 정석인하학원 입장에서는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공정위는 “공익법인의 고유목적 사업과 무관한 대한항공을 위한 출자”로 보고 있다. 이 재단은 인하대와 한국항공대, 인하공전, 인하대 사범대 부속고등학교 등 6개의 학교를 운영한다. 조양호 회장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도 이사로 있다.
공익법인은 일감 몰아주기 등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가 되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설립한 현대차정몽구재단이 대표적이다. 이 재단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이노션과 글로비스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 등 총수 일가가 본인 지분을 일부 출연한 것이다. 애초 이노션은 총수 일가 지분이 80.0%(정성이 고문 40%, 정의선 부회장 40%), 현대글로비스는 43.4%(정몽구 회장 11.51%, 정의선 부회장 31.88%)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었지만, 정 회장 등이 지분을 분산한 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준(30%) 아래인 29.9%로 낮아졌다. 총수 일가가 상장사 지분 30%, 비상장사 지분 20% 이상을 보유할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결국 두 계열사는 정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해갔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인재 양성, 소외계층 지원, 문화예술 지원 등을 목적으로 2007년 설립됐다.
총수 일가가 다급한 상황에 처할 경우, 공익재단이 지배력 유지와 계열사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이사장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금호기업(현 금호홀딩스)에 2015년 10월 400억원(보통주 20만주, 우선주 20만주)을 출자했다. 공익법인 설립 취지를 벗어난 투자인 것은 물론 주당 4만1213원인 인수가가 시장가격의 3배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한 돈으로 워크아웃이 진행중인 금호타이어 지분을 사들여 부실 계열사 지원에 동원됐다는 지적마저 받았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국내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공익법인으로 1977년 설립됐다.
공정위는 “재벌 소속 공익법인이 사회공헌 사업뿐만 아니라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승계, 부당 지원, 사익 편취 등에 이용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공익법인이 공익 증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위(기업집단분과)에서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토론회와 간담회 등 외부 의견수렴을 거쳐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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