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 지원 대상을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까지 확대한다. 또한 금융시장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증권시장안정펀드를 각각 20조원, 10조원 규모로 편성한다.
정부가 24일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확정한 ‘민생·금융 안정 패키지 100조원+알파 공급 방안’은 애초 예상했던 규모를 뛰어넘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내놓은 재정·금융 지원 방안까지 합하면 총 규모가 131조7천억원으로,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6.9%에 이르는 규모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넘어서는 것으로,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 이후 최대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지원 대상을 기존의 소상공인·중소기업에서 중견·대기업으로 확대한 부분이다. 정부는 경기 위축과 수출입 감소 등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29조1천억원 편성하고, 필요한 경우 대기업도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산은)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신보) 등 정책금융기관을 총동원한 공급 규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관광·유통업 등 여러 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조처로 보인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차 대책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만기연장 등에 중점을 뒀지만, 기업 사정(의 타격)이 앞으로 소상공인에 머무르지 않고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이동할 수 있다”며 “모든 것을 다 고려해서 이번 대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만큼 해당 대기업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4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금융위 제공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은 크게 회사채·단기자금시장 안정화와 증권시장 안정화 지원으로 나뉜다. 최근 기업의 장단기 자금 조달처인 회사채 시장과 기업어음(CP) 시장은 채권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신용 경색 현상이 빚어졌다. 정부는 채권시장안정펀드를 20조원 규모로 조성하기로 했는데, 이는 애초 예상됐던 10조원의 두 배에 이른다. 이 펀드는 우량등급 회사채뿐만 아니라 기업어음과 금융채를 4월 초부터 사들일 예정이다. 이효석 에스케이증권 자산전략 팀장은 “4~5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가 많은 채권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규모”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일시적인 자금 경색 문제로 회사채 차환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기업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2조2천억원 규모로 실시한다. 기업은 만기도래액의 20%만 자체 상환하고, 산은이 나머지를 인수한 뒤 채권은행과 신보에 매각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2001년 하이닉스 등을 대상으로 약 3조원 규모로 처음 시행됐고, 2013년 건설·조선·해운·철강 등의 한계기업에 6조원가량이 지원된 바 있다. 산은은 또 1조9천억원 규모로 기업의 회사채 차환발행분도 직접 사들일 예정이다. 대상은 회사채 등급 A 이상 또는 코로나19 피해로 등급이 하락한 기업 중 투자등급 이상이다.
기업어음 등 단기자금시장의 불안을 완화하고자 7조원 정도의 유동성도 지원한다. 증권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 5조원,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차환 지원이 2조원 규모다.
주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는 10조7천억원 규모로 조성한다. 은 위원장은 “5대 금융지주와 업권별 주요 금융회사 등이 뜻을 모아 펀드를 조성한다”며 “1차 캐피탈 콜(투자 대상 확정 후 실제 투자 집행 시 자금 납입) 규모는 3조원 내외가 될 것이며 4월 초부터 본격 투자를 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효석 팀장은 “증안펀드는 예상했던 수준으로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은 되겠지만 정책이 시장의 방향성을 바꿔놓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은택 케이비(KB)증권 수석연구위원도 “지나친 공포심리로 과잉 반응하는 시장을 진정시키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현 한광덕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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