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의 보고서를 검토할 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그래, 그런데 자네 생각은 뭔가?”였습니다. 이 질문의 목표는 실무자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Q. 팀원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합니다. 팀장인 저도 스스로 동기 부여가 어려울 때가 많거든요. 또 팀원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훈련법, 대화법이 있을까요? 예전엔 스파르타식 교육이 흔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방법이 먹히지 않거든요.
돌이켜보면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참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아이가 글쓰기나 산수를 할 때 내 기대 수준으로 빨리빨리 따라 하지 못하면 마음이 급해져 다그친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긴장하고 당황해 실수를 더 많이 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곤 했지요. 내가 회사 팀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저질렀던 실수도 비슷합니다. 어떤 최소 기준의 업무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면 조건반사와도 같이 즉각 “아니, 자네는 어떻게 이걸 모를 수가 있단 말이야?”라고 질책이 나왔습니다. 이 말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아, 자네가 이걸 모르는구나. 그렇구나. 그럼 이렇게 해 보면 어때?”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교육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전달 방식이 정서적 거부감을 일으키면 교육 효과는 형편없이 떨어지는 법이니까요.
나는 진정한 리더가 되고 싶은가
그러나 정서적 반감을 피하려고 특정 대화 기법에만 치중하는 것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강압적인 스파르타식 교육이 아주 큰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엄격한 조련이 효과를 내려면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팀원이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1회에서 말했던 ‘눈맞춤’이 필수적입니다. “저 사람은 나를 고되게 부려먹고 그 덕에 출세하려는 사람은 아니다. 진정으로 내가 실력이 커져서 이 회사에서 성장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라고 팀원이 생각하고 팀장을 신뢰하면 웬만큼 다그치고 심한 말을 해도 겉으로는 투덜댈지 몰라도 마음으로 상처는 입지 않습니다. 그러면 업무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팀원들은 귀신같이 팀장의 속을 다 꿰뚫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안전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팀원의 성장을 바라는 나의 마음이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이것은 ‘나는 과연 진정한 리더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팀장은 팀원을 데리고 함께 일함으로써 조직이 필요로 하는 성과를 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기 위해서 팀장에게는 팀원에 대한 인사권이 주어집니다. 일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권력과 권위에 대해 한번 생각해봅시다. 권력이란 남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이른바 직위 권력(position power)이 한 예가 되겠지요. 한편 권위란 사람들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단단한 기반을 뜻합니다. 그 기반은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구실을 합니다. 따라서 권위는 인간 사회에서, 또 조직 내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진정한 리더란 권위에 기반해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 팀원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진정한 리더가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의 답을 찾다 보면 팀원의 성장을 바라는 진실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런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 금방 들통나게 됩니다. 왜냐면 어려운 순간이 오면 실수를 하게 되니까요. 예를 들면, 상사에게 불려가서 질책을 당한 팀장이 자리로 돌아와 팀원들을 탓하면서 화풀이해버립니다. 그러면 신뢰받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그 상황에서 침묵하면 팀원은 뜨겁게 반응합니다. ‘내가 만든 보고서를 가지고 위에 가서 분명히 깨지고 왔는데 왜 조용하지? 티를 안 내네?’ 부하의 실수는 내 책임이고 그에 따른 질책은 내가 감수한다는 팀장의 자세를 직접 확인하게 되지요.
실제로 상사한테 질책을 받은 뒤 화풀이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것이 팀장의 자기객관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조용히 혼자서 상사나 자신에게 화를 낼 건 낸 다음에 차분히 상황을 분석해 팀원과 함께 대안을 만들어내면 팀장인 나도 성장할 기회를 얻습니다.
“팀장은 팀원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미국 뉴욕시 한 사무실의 회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졌나
어떤 최고경영자(CEO)의 회사생활 모토는 ‘상사에게서 존경받고 부하에게서 인정받자’였습니다. 보통은 상사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고 부하로부터 존경받고자 내 실력을 뽐내고 은근히 자랑을 하거나 내 권한을 앞세우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런 방식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반면에 충분히 실력을 갖추고 소신껏 일하면서도 겸손함을 지키면 상사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마음속으로 존경하게 됩니다. 한편 팀원에게서 실력과 소신을 인정받지 못하는 팀장은 일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팀원들은 각자도생의 생존방식을 취하게 되고 팀 단위의 업무 성과는 나빠질 수밖에 없지요.
기업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일들은 여러 사람의 협업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팀장은 팀원들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리더란 앞에 서서 무조건 나를 따르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팀원들을 리더로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내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리더가 될 때 내가 비로소 진정한 리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팀원들을 성장시키는 방식은 참으로 많습니다. 보고서 작성의 과정이 아주 훌륭한 교육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생활 초기에 나는 팀원이 보고서를 만들어 오면 빨간 펜 노릇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보고서를 완성하기 전에 그 사안에 대해서 가능한 한 명확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초반에 길을 잘못 들면 수정하는 데 많은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었지요.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실무자들과 함께 보고서 초안을 두고 토론했습니다. 처음에 자료를 놓고 보고를 받으면 실무자가 직접 고민한 것인가, 아니면 여기저기서 자료를 짜깁기한 것인가 금방 보입니다.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그래, 그런데 자네 생각은 뭔가?”였습니다. 이 질문의 목표는 실무자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금방 답이 안 나오는 경우엔 이리저리 생각의 방향틀을 더듬어서 “혹시 이런 뜻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계속하다 보면 실무자는 조금씩 자기 생각의 줄기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애초 보고서에 있는 문장들을 점검하면서 그 문장의 논리적 전개방식뿐 아니라 그 배경에 있는 생각들을 같이 훑어보고 생각들을 맞추어 나가는 작업을 할 수 있지요.
팀장인 내가 답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함께 길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실무자는 ‘아하!’ 하는 경험들을 하게 되고 그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럼 묻습니다. “이제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졌나?” 실무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지요. 즉 보고서를 같이 검토하면서 새로운 사고의 지평이 열리고 생각의 근육이 단련되는 것이지요.
가장 행복하고 짜릿한 쾌감을 느꼈을 때는 부하에게 졌을 때입니다. 팀원이 가져온 보고서 초안을 그냥 얼핏 읽어보고는 내가 무엇인가를 지적하는데 팀원이 우물쭈물하면서도 “아 예, 사실은, 그게 아니고요, 이런 겁니다”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읽어보고는 “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이 친구가 스스로 생각했구나!”라고 깨달을 때입니다. 그가 나를 이긴 것입니다. 아, 부하에게 지는 행복함이 얼마나 큰지요.
▶이병남.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지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다 1995년 엘지(LG)그룹 임원으로 입사해 인사, 교육, 노사관계 및 지배구조 업무를 맡았다. 2008년 사장 승진하면서 인화원장으로 부임해 8년간 원장직을 수행하고 2016년 퇴임. 인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를 풀어낼 해법 역시 인간에게서 비롯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저서 <경영은 사람이다>(2014)에 담겼다. 인간존중이라는 경영의 본질을 잊지 않고 21년간 숨 가쁘게 현장을 누벼온 그가 일터에서 겪는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4주에 한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