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 인사의 원칙을 생각해봤습니다. 서양적 관점으로는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었던 잭 웰치가 말한 ‘제대로 된 사람(right people)을 뽑아서 이기는 팀(winning team)을 만드는 것’, 동양적 관점에서는 <맹자> 공손추편에 나오는 ‘지혜로운 사람을 존중하고 발탁하여 필요한 자리에 임명해 뛰어난 인재들이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임현사능·任賢使能)이 인사의 본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인사는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요? 우선 일과 그 역할에 맞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 무엇보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먼저 정해져야 합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제대로 된 사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조직에서 유용한 사람이 반드시 우리 회사에도 유용하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평가 기법을 마련하기에 앞서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공유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부 논의와 합의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공유가치를 현실 시장과 조직에서 실현하는 주체로서 조직 구성원들은 과연 어떤 능력과 태도, 동기를 갖추어야 하는가를 그다음에 정해야 합니다.
핵심은 제대로 된 사람(right people)은 최우수 인재(best people)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뇌회전이 빠르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은 일반적인 최우수 인재라고 부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회사를 위한 제대로 된 인재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인재를 뽑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평가자의 능력입니다. 즉 사람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 없는 평가는 오류의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회사들이 활용하는 평가 프로그램들을 보면 몇가지 역량(competence)을 중심으로 강점, 단점, 보완점의 프레임에 바탕을 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것만으로 한 개인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러가지 성격 검사 도구들을 활용하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을 넘어선, 그 사람의 성품(character)까지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사에서는 평가 기준 합의가 중요
회사 공유가치에 대한 논의 필수적
임명권자는 편견 없는 시각 갖춰야
차세대 리더 키울 땐 적극 다가가고
너무 빠른 승진도 성장엔 좋지 않아
5060이 자기 효용 생각하면 역효과
율곡 이이의 <석담일기>에 나오는 부분을 봅시다. 허구한 날 일년에도 몇차례씩 재상들을 경질하는 선조에게 상소문을 올려서 임현사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람을 제대로 보려면 임금 자신이 마음을 잘 닦아야 한다고 직언을 합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인사권자의 자기성찰 지능을 문제 삼은 겁니다.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언어, 논리수학, 공간, 음악, 신체운동, 인간친화, 자기성찰, 자연친화 등 8개) 중에서 자기성찰 지능이란 말 그대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입니다. 자기 마음을 맑게 하면 거울과도 같아져서 상대방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나의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즉 여실지견(如實知見)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자기성찰은 침묵과 홀로 있음 속에서 자신과 대면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면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여 상대방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월감이 지나친 경우에는 상대가 무능하면 그것을 죄악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반대로 열등감이 지나친 경우에는 상대방의 일부 장점을 그 사람 전체로 확대해 판단을 그르치지요. 그러니 남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자신의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닦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자연을 가까이하고 명상을 포함한 영성적인 훈련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지난 글에서 말한 것처럼 저는 제 밑의 직원을 달라고 하면 두말하지 않고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직원을 내어주었다고 해서 그 직원을 잘 봐달라고 청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제 밑의 한 부장을 눈여겨본 계열사 사장이 스카우트하겠다고 하더군요. 임원을 바로 시키겠다고요. 저는 그러지 말고 데려가서 1년 정도 직접 실력과 인품을 살펴보라고 제언했습니다. 1년이 지나자 그를 임원으로 승진시켜도 되겠다고 그 사장이 다시 말하더군요. 그런데도 저는 아직 좀 이르니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장이 화를 내면서 아니, 일을 제대로 하려면 임원을 시켜야 하는데 왜 자꾸 못 하게 하냐고 따지더군요. 그래서 제가 마지못해, 정 그러면 그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끼는 직원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사를 방해한 셈인데요, 저는 그것이 그 직원에게도, 사장에게도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직 내에서 지나치게 빨리 승진하는 것은 길게 보면 좋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주변으로부터 불필요한 견제와 방해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른 승진은 간혹 본인의 자아 팽창(ego inflation)을 가져와서 과욕을 부리거나 실수를 하게도 만듭니다. 또한 최고경영자(CEO)가 외부에서 직접 데려온 사람이라고 하면 역시 주변의 협조를 얻는 데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평이동한 뒤 능력과 성과를 인정 받은 후에 승진하면 무리가 없고 시이오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요.
회사 안에서 성장의 기회가 늘 지속적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가지 여건이 무르익었을 때 간혹 옵니다. 상사의 임무는 늘 안테나를 세워서 그런 기회를 포착하고 그 개인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직원은 자녀와 비슷합니다. 자녀를 아끼는 마음에 끼고 돌기만 하면 그 자녀는 성장의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넘어져본 경험이 많아야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깨칩니다. 다칠까 봐 한번도 넘어지지 않게 하면 결코 일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회사 생존과 후배 성장 고민하는 고통
중간관리자의 숙명이자 성장통이기도
남다르게 고민하는 사람이 사장 돼야
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점을 유념하길
앞서 조직 구성원들이 번아웃되고 또 자꾸 아프면 조직이 아픈 것이니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직이 건강하지 못할 경우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이직 현상입니다. 최근에 5년 전 1천명 이상 지원자 가운데 5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다는 어느 회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5년 만에 신입사원이 다 떠나고 이제는 1명만 남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신입사원의 채용과 이직, 그 기간 동안에 회사가 뽑아놓은 인재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회사 안에 좋은 인사 시스템을 갖추고 채용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들게 뽑은 좋은 인재를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일단 뽑아놓았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설혹 나가게 되더라도 다른 지원자 많으니 또 뽑으면 되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정말 위험합니다. 이직은 채용 관련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조직 내 암묵지(tacit knowledge, 경험적 지식) 또는 긍정적 조직문화 형성을 저해하기 때문입니다.
이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불만족’입니다. 불만족의 원인은 단순하게 보면 ‘동기요인’(motivational factor)과 ‘위생요인’(hygiene factor)의 결핍에서 출발합니다. 동기요인은 일 자체와 성취감, 성장감, 인정 등을, 위생요인은 급여, 근무환경, 조직관리방식, 상하관계 등을 말합니다. 특히 회사의 경영진이 5060세대로 구성돼 있는 경우 2030세대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들을 향후 경영진으로 키우고자 하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노력이 부족한 사례가 많은데, 이럴 때 2030세대의 불만족이 커집니다. 경영진은 자신이 떠난 후에 더 훌륭한 후배들이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힘들게 뽑은 우수한 인재를 최선을 다해서 지켜내고 키워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030세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역지사지하면서 다음 세대 리더를 키워내야 합니다. 5060세대가 얼마 남지 않은 회사 생활에서 자신들의 효용 극대화에만 몰두한다면 그 회사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젊은 인재들이 실망한 채 외부에서 기회가 생기면 이직할 테니까요.
<축의 시대>의 저자로 유명한 비교종교학자 캐런 암스트롱은 자서전 <마음의 진보>에서 중세 유럽의 성배의 신화 얘기를 하면서 ‘기사(영웅)들은 아무도 가지 않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했습니다.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뜻이지요. 그 이유는 남들이 내어놓은 길만 따라가면 길을 잃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자기 영혼과 대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삶의 대부분을 우리는 남들과 더불어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길을 갑니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숲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인생의 어떤 특별한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자기 중심성의 위기가 왔을 때인 것 같습니다. 이때 과연 나는 비장한 각오와 의지만으로 그 길을 갈 수 있는 걸까? 성배의 신화 속 그 기사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길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 길을 나설 결심을 했을까? 무엇이 그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명정한 정신으로 행동적 결단을 하게 했을까? 나만의 그 길이 내게 주는 그 근원적 생명 에너지는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
당신이 소통하지 않는 5060세대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중간관리자라면 많이 지칠 겁니다. 홀로 조직의 미래에 대해 본질적인 고민을 하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길을 선택하고자 하면서 아마도 소외되거나 상처를 입고 있겠지요. 지위는 중간간부지만 생각은 사장 이상의 수준으로 회사의 생존과 번영, 후배 직원들의 성장을 고민하고 있으니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이 고통의 원인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춰보면 회사 생활 초기부터 사장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고통받으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결국 사장이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조직이 제대로 된 회사입니다.
<논어>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남들과 함께 잘 지내되 생각이 같아지려고는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조직 생활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추구하는 공유가치가 같기에 성격이나 취미 등이 다르더라도 함께 일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공유가치가 다르다면 구태여 함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화이부동보다 부동이화(不同而和)를 더 많이 생각했습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함께 일한다는 태도 말입니다. 사람들이 다른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그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5060세대여, 부동이화의 자세로 2030세대에게 말을 걸어보십시오.
▶ 이병남.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지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다 1995년 엘지(LG)그룹 임원으로 입사해 인사, 교육, 노사관계 및 지배구조 업무를 맡았다. 2008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인화원장으로 부임해 8년간 원장직을 수행하고 2016년 퇴임. 인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를 풀어낼 해법 역시 인간에게서 비롯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저서 <경영은 사람이다>(2014)에 담겼다. 인간 존중이라는 경영의 본질을 잊지 않고 21년간 숨 가쁘게 현장을 누벼온 그가 일터에서 겪는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