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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준법감시위 권고에 등떠밀린 ‘이재용 사과’

등록 2020-05-06 22:17수정 2020-05-07 10:39

“경영권 대물림 않겠다” 지배구조 내용은 없어
예상밖 ‘4세 경영’ 포기 주목
총수 리스크 줄이기 큰 의미

“무노조 경영 안하겠다” 삼성총수 첫 공개 언급
아킬레스건 노조 문제 꺼냈지만
선택지 없는 상황서 때늦은 감

“준법 문화 뿌리내릴 것” 구체 로드맵은 안 내놔
X파일 때 만든 ‘삼지모’도 흐지부지
‘외부조직 통한 개혁 한계’ 의구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6일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회견은 자신에 대한 재판과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뤄졌다. 사과 자체도 양형 깎기 수단이란 의심을 받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점은 사과의 의도나 진정성을 가늠케 하는 ‘기본 환경’이다. 그럼에도 “자녀에게 경영권을 넘기지 않는다”는 발언 등 회견에서 밝힌 그의 약속은 혈연에 기초한 국내 재벌그룹의 후진적 토양이나 삼성이 국내 재벌그룹에 미치는 파급력을 떠올려보면 무게감도 적지 않다. 다만 준감위가 평가의 잣대로 제시한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사과’에 이르렀는지는 미지수다. 선언에 뒤이어야 할 실천이 회견장을 떠난 그에게 남겨진 큰 숙제다.

■  경영권 승계 이날 회견에서 가장 시선을 끈 부분은 ‘4세 경영 포기’ 발언이었다.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과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에 이은 3대 총수인 이 부회장에겐 갓 20살이 넘은 아들과 10대인 딸이 있다.

셀트리온그룹의 서정진 회장이나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전 대표 등 신흥 재벌 중엔 혈연 승계를 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10대 그룹 총수 등 전통 재벌 중에는 단 한 명도 없다. 혈연 승계는 국내 재벌그룹들의 묵은 아킬레스건이다. 승계를 둘러싼 법적 논란은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꼽는 한국 재벌만의 전근대적 특징이었다.

10대 그룹의 사장급 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부분 그룹이 승계 문제로 과거는 물론 현재, 아니 미래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삼성의 파급력을 염두에 두면 재계에 승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만 이 부회장은 총수가 아닌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할 전략과 시점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 부회장이 승계를 넘어 지배구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점은 큰 구멍이다. 소유와 지배구조는 함께 묶여 돌아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계열사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지배구조는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거대 그룹을 장악할 수 있는 물적 토대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 개혁 방안으로 ‘금융그룹 통합감독’ ‘보험업법 개정’을 세운 것도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제조업과 삼성생명이 중심인 금융업이 뒤섞여 있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의 부친 이건희 회장은 과거 비자금 사건으로 대국민 사과를 할 때, 개선 방안 중 하나로 ‘지배구조 개선’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  노조 경영 이 부회장은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 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창업주 이병철 선대 회장 이래 삼성의 상징이자 아킬레스건인 노조 문제를 꺼낸 것이다. 총수가 이 문제를 공개 석상에서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은 그간 무노조 경영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무노조 경영이 아니라 비노조 경영”이라며 비켜가거나 “노조 있는 기업보다 더 많은 보상을 직원에게 해주고 있다”고 반박해왔다. 노동계 등 시민사회와 끊임없이 갈등해온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삼성 특유의 역사를 염두에 두더라도 이 부회장의 이날 발언은 때늦은 감이 있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삼성그룹 핵심 경영진이 노조파괴 등의 이유로 무더기로 사법 처리될 정도로 이 부회장으로선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그룹 명의의 사과문은 두달 전에 발표되었고, 직후 삼성전자 등 계열사에 노조들이 생겨나고 있다. 준감위도 지난 3월11일 “이 부회장이 직접 무노조 경영 포기 의사를 밝히라”고 짚기도 했다. 이날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이 없었다면 그것이 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상황이었다.

■ 시민사회 소통 강화, 준법 경영 이 부회장은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와 견제가 본연의 역할”이라며 “기업 스스로 볼 수 없는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했다.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동안 삼성한테 시민단체와 언론은 회유의 대상이었고, 길들지 않으면 ‘부당한 행위’도 멈추지 않았다. ‘삼성공화국’ 혹은 ‘삼성왕국’이란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따라붙었던 주된 이유였다. 이 부회장과 그가 이끄는 삼성그룹의 향후 행보에 따라 그의 약속이 허언이었는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로,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히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며 “저와 관련된 재판이 끝나도 준감위가 독립적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삼성은 2006년 2월 삼성 엑스파일 사건이 드러나자, 대국민 사과와 8천억원 사회 헌납을 밝히고 현재의 준감위와 유사한 명망가 중심의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을 만들어 운영한 전례가 있다. 삼지모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좌초한 사례는 준감위와 같은 외부 조직을 통한 삼성의 개혁이 한계를 갖고 있다는 의구심을 낳는 배경이다. 짧은 회견에서 이 부회장은 시민사회와의 소통 강화와 준법 경영을 위한 로드맵은 내놓지 않았다.

구본권 신민정 조계완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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