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130주년 세계 노동절 행사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대비해 방독 마스크를 쓴 참가자가 ‘비정규직 철폐'라고 쓴 머리띠를 고쳐매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 세상을 둘러싸고 이른바 ‘90% 경제’라는 새 어휘가 요즘 각국 경제정책 담당자와 기업·경제학계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4월30일치 커버스토리로 다룬 기사 꼭지에 붙인 문패 제목이다. 코로나19 봉쇄가 풀린 뒤의 일상(생산 가동과 소비활동 등)은 이전보다 90% 수준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코로나19 종식이 선언되더라도 2·3차 대유행 가능성이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으로 존재하는 터라 경제주체마다 두려움에 여전히 거리를 두고 접촉을 줄이면서 생산·소비·투자, 교환·계약 같은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일에서 90% 수치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만 ‘경제’에선 비참한 상태를 뜻하게 된다”고 사뭇 비장한 어투로 설명을 보탰다.
물론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2019년 1914조원)이 10% 줄어 1700조원 수준으로 곧장 후퇴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최근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략대화’ 회의에서 ‘90% 경제’를 인용하며 비상한 결의를 다졌다. 그는 “경제활동이 재개되더라도 가계 소득 감소와 기업 도산 증가로 경제활동의 두 축인 소비와 투자가 과거보다 위축될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과거와는 다른 ‘뉴노멀’을 준비해가야 한다”고 근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
경제의 ‘재생산’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은 확대재생산을 기본 가정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90% 경제는 이를테면 ‘축소재생산 경제’의 등장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던진다. 역사상 자본주의 경제를 주기적으로 괴롭혀온 과잉생산이나 경기순환 변동을 넘어 지금은 생산 자체가 멈춰버렸고, 생산 수확체감 같은 ‘자연적 법칙’을 넘어 생산·소비 회로가 아예 고장나버렸다. 이런 상태에 접어들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곳에 가장 먼저, 가장 큰 고통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20여 년 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10여 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우리가 경험한 그대로다.
경제정책과 제도는 사회경제적 계층과 집단에 차별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대자본으로 시장을 독과점 분할하는 거대 기업은 주로 내구재를 생산·판매하고 수요도 안정적인 편이다. 회복 탄력성도 클 것이다. 반면 광범위한 불완전 고용계층과 자영업자가 코로나19 충격에 먼저 감염되는 건 고약한 노릇이지만 현실이다.
시장자유주의 경제학의 거인으로 불리는 조지프 슘페터나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발전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과 일반 대중의 이익에 복무한다고 설파했다. 자본주의 엔진은 대량생산인데, 일부 부유층에는 혜택이 별로 없고 대중을 위한 생산을 뜻한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생산의 전형적인 업적은 값싼 의류, 저렴한 면직물, 값싼 구두, 값싼 자동차 등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비단양말을 갖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미덕은 여왕에게 더 많은 비단양말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공장 여공도 비단양말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해주는 데 있다.”
슘페터가 한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생산공급 가치사슬망이 구조적으로 훼손돼 발전과 생산이 파열되면 대중과 여공부터 더 열악한 처지에 빠져들게 된다. ‘그린 뉴딜’ 부류의 포스트 코로나19 정책 논의가 무성하지만, ‘90% 경제’를 받아들인다면 시장 열패자를 대상으로 삼은 정교하고 준열한 정책 조준에 나서야 할 때가 저만치 와 있다.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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