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맨 오른쪽)이 지난 2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2020년 세법개정안’ 사전브리핑에서 발표문을 낭독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22일 공개한 세법개정안은 고소득층, 다주택 보유자 등에게 세금을 더 거두는 대신 코로나19 등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에 대한 세금은 줄여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부자 증세’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늘어나는 세수는 5년간 총 676억원에 그쳐 실제 증세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2020년 세법개정안’을 보면 소득세는 내년부터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에 ‘10억원 초과’ 구간이 새로 생긴다. 기존 7개 과표구간에 따라 6~42%이던 세율이, 8개 과표구간으로 늘어나고 6~45% 세율이 적용된다. 정부는 2017년에도 과표구간 3억~5억원 구간과 5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각각 40%, 42%의 세율을 부과하는 고소득층 증세를 한 바 있다. 3년 만에 다시 초고소득층을 상대로 세금 부담을 늘린 것이다. 기재부는 새 구간 적용 대상은 1만6천명(2018년 기준)이며, 세수 확대는 9천억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이미 지난 7월10일 부동산 대책에서 발표한 대로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가 대폭 강화된다. 3주택자 및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율은 0.6~3.2%에서 1.2~6%로 인상된다. 1주택에 대한 종부세율도 0.5~2.7%에서 0.6~3%로 올라간다. 정부는 종부세 납부자는 51만1천명(지난해 기준, 다주택자 20여만명 포함)이며 종부세율 인상으로 인한 세수증가는 9천억원이라고 설명했다. 단기보유 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다주택자의 취득세도 인상된다.
정부는 서민·중소기업을 위한 지원은 강화되거나 유지된다고 밝혔다. 간이과세자 기준이 연 매출액 4800만원에서 8천만원으로 올라가고, 부가가치세 면제 기준금액도 연 매출액 3천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이에 따른 세수 감소는 4800억원이다. 수도권 지식기반산업 등 중소기업 46개 업종에 대해 소득세·법인세 5~30% 세액감면은 2년 더 연장한다. 또 저소득층의 목돈 마련 지원을 위해 조합 출자금 등의 이자·배당소득에 비과세 특례를 유지한다.
이번 세법 개정으로 2021~2025년 5년 동안 세수가 총 676억원 증가(직전 연도와 대비하는 순액법 기준)할 것으로 추산했다. 고소득자·대기업은 1조8760억원 세부담이 늘어나는 반면 서민·중소기업 등은 1조7688억원가량 줄어든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소득세 최고세율이 인상되지만 여러 투자세액 감면과 서민 감면 등으로 세수중립적”이라며 “증세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부자 증세’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임재현 기재부 세제실장은 “5년간 누적법(올해 대비 세수 변화)으로 하면 세수가 오히려 줄어든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 극복, 한국판 뉴딜 등 재정지출 수요를 고려하면 정부의 세수 확보 의지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각 계층별 적절한 세금 배분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나 계획이 없이 고소득층에 한정해서 인상했다”며 “정부에 체계적인 증세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 김학수 공공경제연구부 연구위원도 “재정지출은 앞으로도 확대되는 반면 세입 여건은 약화된 상황”이라며 “전반적인 증세를 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도 국채발행으로 재정적자를 메우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