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이 직장이 가깝고 새 아파트 단지가 많은 곳이어서 전셋집을 알아봤는데 매물 자체가 씨가 마른데다, 전세 보증금이 불과 몇달 전보다 1억~2억원씩 올라 어찌할 도리가 없네요. 인근 하남시 등으로 눈길을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서울 강동구 주민 정아무개씨)
최근 서울 지역 신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전셋값이 급등하고 전세 물건은 품귀를 빚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보유세 증가, ‘임대차 3법’ 등을 구실로 집주인들이 전세계약 만료 시점에 전셋값을 많이 올리는 사례가 속출하는 데 따른 것이다. 전세시장에서 번지고 있는 연쇄 가격상승 불길을 잡기 위해선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 임대차계약 신고제 등 ‘임대차 3법’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전용면적 84.9㎡는 지난 21일 보증금 7억9천만원(8층)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이는 지난 5월16일 보증금 6억원(11층)에 거래된 것과 견줘 두달 사이 1억9천만원이 뛴 것이다. 고덕동에서 가장 최근인 올해 2월 입주한 ‘고덕아르테온’의 경우 전용면적 59.9㎡가 5월17일 보증금 5억3천만원(8층)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는데 지난달 26일에는 7억원(8층)에 계약됐다. 이후 소형, 중대형 등 모든 주택형에서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성동구 금호동2가 ‘래미안하이리버’ 114.3㎡는 이달 14일 보증금 9억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져 불과 2주일 전인 3일 7억4천만원에 거래된 이후 1억6천만원이 올랐다. 마포구 용강동 ‘래미안마포리버웰’ 84.9㎡의 경우도 21일 보증금 8억9천만원에 전세 계약이 돼, 7일 8억원에 거래된 지 2주일 만에 9천만원이 올랐다.
이처럼 최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뛰어오르는 요인은 복합적이라는 게 부동산업계의 진단이다.
먼저 당정이 추진 중인 ‘임대차 3법’ 시행에 앞서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미리 올려 받으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 전세시장 최대 불안 요인으로 지적된다. 마포구 아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 최소 4년 동안은 보증금을 못 올려 받게 된다면서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몇천만원씩 올리고 있다”며 “워낙 전세가 귀하고 마땅히 다른 곳으로 갈 데도 없다 보니, 세입자들은 오른 전셋값을 받아줄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규제지역 확대와 대출 규제 등을 통해 주택 매수 수요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6·17 대책’도 전세시장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6·17 대책으로 조정대상지역이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자가 거주 상태가 아닌 1주택 집주인들이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 충족, 보유세 공제 등 절세를 위해 전세를 주고 있던 집으로 직접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조정대상지역에선 집주인이 2년 이상 실거주해야 시가 9억원 이하 1주택자 양도세가 비과세되고 9억원 초과 주택도 실거주 기간이 길수록 양도세와 보유세 등 공제액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7·10 대책을 통해 보유세 인상에 나서면서 세금 인상분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많아지는 것도 전세 품귀 현상을 부채질하는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 조기 시행과 주택 공급 확대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제도가 바뀌는 과도기에 전셋값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일부 미흡한 점은 차후에 재개정 논의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서둘러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시행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셋값 안정을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에 충분한 물량이 공급될 것이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급 신호가 있으면 대기 수요가 일단 전세시장에 머물겠지만 실제 주택 공급이 이뤄질 때는 주거상향 수요의 연쇄 이동으로 집값과 전셋값의 동반 안정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