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소상공인들의 누적된 영업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방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27일 낮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상점 유리창에 ‘코로나 여파로 휴업을 한다’는 안내문이 내걸려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미국과 영국은 자본주의 종주국으로 불리지만 그동안 복지는 독일과 북유럽 등에 견줘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에서는 두 나라가 상당히 파격적인 조처들을 취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의 경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이 재원 규모와 작동 방식에서 눈길을 끈다. 미국 의회가 마련한 재정지원법안(CARES Act)에 따라 이 프로그램에 무려 6590억달러(728조원)의 재원이 배정됐다. 지난해 1차 프로그램 때 이 중 5250억달러가 풀려 나갔다. 이달부터 시행하는 2차 지원에서는 지원 가능 대상을 500명 이하 업체에서 300명 이하로 좁혔다. 미국 중소기업청은 설명자료에서 “1차 때 수혜 업체의 75%가 직원 9명 이하의 소기업”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이 프로그램이 명칭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주로 고용유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소개돼왔으나, 실제로는 고용유지 외에도 고정비용 지원과 자금용도 전용 방지까지 1석3조의 효과를 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원 방식은 대상 업체에 월평균 직원 인건비의 2.5배를 대출해주고 요건을 충족하면 탕감해준다.
탕감 요건은 세가지다. 첫째, 직원 수와 급여 수준을 8~10주간 유지하고, 둘째, 대출금은 인건비와 고정비용 등 필요경비에 사용하며, 셋째, 대출금의 최소 60% 이상은 인건비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정비용 용도는 1차 때 월 임차료, 주택담보대출 이자, 유틸리티(전기·수도세 등) 등에서 2차 때는 코로나19 관련 보호장비, 소프트웨어 구입 같은 운영비까지 확대됐다. 예컨대 1만7555달러(1940만원)를 대출받은 소상공인이 이 중 60%인 1164만원을 직원 인건비에 쓰고 나머지 776만원을 월 임차료 등 고정비용에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상환 면제를 받을 수 있으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연 1% 이자율로 5년 안에 갚아야 한다. 이 때문에 대출금을 주식투자 등으로 전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영국은 숙박·식당·헬스장 등 대면서비스 업종에 대한 집중지원 외에 금융지원에서도 대출금의 첫 1년치 이자를 정부가 전액 부담하는 등 우리나라보다 훨씬 관대했다. 영국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회복지원대출제도(BBLS)를 운영 중인데, 연 매출의 25% 범위 안에서 최소 2000파운드(300만원)에서 최대 5만파운드(7600만원)까지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대출해준다. 이때 대출 취급비용과 최초 1년치 이자는 면제(남은 기간은 연 2.5%)해준다. 이는 정부가 대출 원금과 이자에 대해 100% 보증을 서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18일부터 적용하는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최대 2000만원 대출)의 경우 보증료가 1년차 0.3%, 2~5년차 0.9%이며, 이자는 주요 시중은행은 2%대, 나머지 금융회사는 2~3%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대규모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동시에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3조3천억달러 규모의 증세안을 제시했다. 사진은 바이든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 있는 에이브러험 링컨 전 대통령의 초상화 앞에서 코로나19 대응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워싱턴/AFP 연합
미국과 영국에서도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31%, 영국은 108%에 이른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두 나라 정치지도자들은 증세 청사진을 내놓는 등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10년간 3조3000억달러의 증세안을 제시했다. 고소득층의 소득세·자본이득세 인상과 법인세 인상이 주요 수단이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도 최근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재정이 좀 더 지속 가능하도록 되돌리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재정을 풀되, 상황이 나아지면 증세를 통해 나라 곳간을 다시 채우겠다는 얘기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우리나라의 재원 마련 방안과 관련해 “경제가 발전한 만큼 이제 예산에서 산업 지원 분야는 민간 쪽에 맡기고 대신 정부는 어려운 계층을 지원하는 사회분야 예산을 늘려야 한다”며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증세를 하기 어렵겠지만 지금부터 증세안을 준비해 1~2년 뒤에는 실행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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