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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집값 못잡고 대출만 잡는 정부…충격요법에 서민들만 ‘발동동’

등록 2021-08-23 16:30수정 2021-08-24 02:48

수요자 “이사 가야 하는데 대출 못 받나” 불안
주택 구매 위축 효과 있지만 금리인상 등 부작용 우려
23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앞에 대출 광고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23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앞에 대출 광고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이아무개(44)씨는 내집 마련을 위해 지난주 아파트 구매 계약을 했다. 들어갈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의 전세 기간이 끝나는 10월 말에 잔금을 치르는 것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잔금일에 맞춰 받을 계획인데, 최근 일부 은행의 대출 중단 뉴스를 보면서 혹시 자신도 대출이 안 나올까 걱정이 앞섰다. 이씨는 “빚 안 내고 집을 사려고 열심히 돈을 모으는 사이에 집값이 두 배로 뛰었다. 집 사려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도 화가 나는데, 혹시라도 대출이 중지되면 계약금을 날릴 판이라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의 대출 중단 사태와 신용대출 한도 축소 방침으로 하반기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대출 잠정 중단을 선언한 엔에이치(NH)농협은행은 물론이고 다른 은행 영업점에도 대출 가능 여부를 묻는 상담이 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울 강남구 지점에선 생활안정자금이나 사업자 대출도 다 막히는 것 아닌지 우려해 미리 대출을 실행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고객들이 오전 내내 몰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 이내로 축소한다는 보도 이후 영업점에는 미리 대출을 받기 위해 문의하는 전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현재 보금자리론 신청 진행 중이고 9월 말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혹시라도 다른 은행으로 파급 효과가 있을까봐 너무 겁이 난다”, “9월 말 전세로 이사갈 예정인데 대출 못 받고 이사도 못 가게 되는 것이냐” 등 불안을 호소하는 글이 잇따른다. 결국 금융위원회는 이날 보도설명자료를 내어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은 적정 수준의 대출 공급을 지속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과거에도 정부는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이런 ‘충격요법’을 썼다. 2006년과 2011년에도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을 일시 중단한 사례가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중단이라는 충격요법을 쓰면 소비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에 집을 사려는 수요가 다소 억제되는 효과가 있어 정부도 이 점을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불안심리로 인해 가수요가 생기면 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다”며 “어차피 현금이 많은 사람들은 피해보는 게 없고 결국 서민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도 “앞으로는 대출금리 인상, 대출한도 축소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이런 점을 고려해 자금조달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정책이 그동안 효과적으로 집행되지 못했고, 근본적으로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집값 상승 문제를 대출 규제로만 해결하는 건 잘못된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남주하 서강대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대출 규제를 강력하게 하지 않아서 풍선효과를 일으켰고 문제가 생기면 뒤늦게 추가로 규제를 강화하는 식이 되풀이됐다”며 “결국 한계점에 도달하니 갑작스럽게 대출이 중단되고 소비자는 예측 불가능한 정책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는 “가계부채 급증은 결국 부동산 가격 폭등 때문인데, 유동성을 과도하게 풀면서 대출만 관리하는 건 효과가 없다”며 “금리를 올려 유동성 줄이고 대신 먼저 고통받을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은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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