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부터 금융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우리금융그룹 손태승 회장(당시 우리은행장) 제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는 손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보도자료를 통해 ‘두가지 제언과 소회’를 밝혀 주목을 끈다.
첫번째는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관련 법령과 고시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개정해 예측가능성과 실효적 규제가능성을 동시에 높여달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사유 5개 중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처분사유가 인정되지 않은 이유는, 판례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쟁점에 관하여 피고(금융감독원)가 적용할 법리를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 데에도 그 잘못이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과 시행령, 그리고 관련 고시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고 지적했다.
두번째는 내부통제규범과 기준을 위반하거나 형해화시킨 금융기관 내부의 조직적 행태와 문제점을 판결문에 낱낱이 적시함으로써, 금융기관과 감독기관의 성찰을 촉구한 것이다. 재판부는 문제점을 자세히 드러낸 이유에 대해 “애초에 금융기관에서 상품을 선정하고 판매하도록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과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개별 금융기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조직적 부당행위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거시적 관점을 공적 영역에 분명히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재판부의 이런 제언과 소회는 우리은행의 디엘에프 상품 선정과 판매 과정에서 심각하고도 조직적인 문제가 있었음에도 법령 미비로 인해 우리은행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실제로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때는 임직원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회사들은 법 조항에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은 없는 만큼 이 조항을 근거로 제재를 할 수 없다고 반박해왔다. 기준 마련 의무 조항을 둔 것은 준수를 전제로 한 것이므로 준수를 하지 않으면 제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금감원의 제재 심의 과정과 행정소송에서 계속 쟁점이 됐던 문제다. 다만, 금감원은 고시 등 하위 규정을 근거로 제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명시적인 법 조항을 중시하는 법원으로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법령 미비는 돌이켜보면 ‘관치금융’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금융사에서 은행이 판매한 금융상품으로 소비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은행장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 제재를 받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손 회장이 사실상 첫 중징계 대상이었다. 법령 미비로 인해 은행 실무자들만 책임을 지고, 실제 업무를 ‘구두로’ 지시했던 은행장은 책임에서 자유로웠던 것이다. 이는 금융위원회 관료들이 퇴임 뒤 은행장으로 내려가던 관행과 무관치 않아보인다. 자신들이 나중에 맡을 은행에서 자신들이 제재받을 수 있는 법 조항을 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금감원은 재판부의 지적처럼 이렇게 “판례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쟁점에 대해 법리를 재구성해 항소에 나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금융 관련 법령 제·개정권을 갖고 있는 금융위는 하루빨리 법령 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재판부가 우리은행의 조직적 부당행위를 적시하고 있는 만큼, 손 회장의 승소는 ‘상처뿐인 영광’일 수 있다. 재판부의 제언대로 “금융기관과 감독기관 모두의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제2의 디엘에프·사모펀드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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