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8월 기본금융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 블로그 갈무리
광주에 사는 장아무개(22)씨는 시외에 있는 회사로 이직한 뒤 출퇴근 교통편이 나빠 중고차를 구입하려 했다. 500만원 정도 필요했는데 은행권 대출을 알아보니 재직기간이 1년이 안 돼 대출을 거절당했다. 중고차 딜러가 한 캐피탈회사를 소개해줘 결국 연 15%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 차를 샀다. 장씨는 매달 비싼 원리금을 내야 해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고 직장 동료들은 “이자 15%면 사채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넷을 뒤지다가 정책금융상품인 ‘햇살론 유스(YOUTH)’를 겨우 알게 돼 연 3.5% 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내건 기본대출 공약에 관해 장씨는 “지금은 급전이 필요하지 않지만 살다보면 불가피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그때 저금리 대출의 문이 열려있다면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 시리즈 공약 가운데 ‘기본대출’은 금융권이나 학계에서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다. 국민 누구에게나 최대 1천만원을 10~20년간 저리(연 3% 안팎)로 빌려주는 것이다. 시중은행이 대출을 해주고 정부가 100% 보증을 해주는 방식이다.
대다수 서민이 불공정한 금융시스템 때문에 제도금융에서 배제되는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이 후보는 상대적으로 금융 혜택을 못 받는 2030 세대를 대상으로 먼저 시행하겠다고 했다. 만 19~34살 청년 수가 1014만명이고 이 가운데 고신용자(신용 1·2등급)는 대출받을 유인이 없도록 금리를 설정할 경우 3등급 이하 실 이용자는 750만명이 된다고 추산했다. 이들이 모두 일시적으로 대출을 받는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하면 약 75조원이 필요하다.
■ 높은 금융문턱에 좌절…기본대출 환영
<한겨레>는 15일 광주에 있는 청년금융복지지원센터를 통해 이 지역에서 일하는 2·30대 9명에게 기본대출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이들은 익명을 전제로 의견을 자유롭게 전해왔다. 대체로 기본대출 공약을 환영했지만 무분별한 대출은 오히려 청년들을 대출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기본대출에는 7명이 찬성했고 이 가운데 4명이 전세보증금 같은 주거비에 대출금을 쓰겠다고 했다. 임아무개(31)씨는 “지방에 사는 청년들은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사는 것을 바라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도전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본대출 자금은 도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자신이 하는 사업에 쓴다거나 꿈을 이루기 위해, 급전이 필요할 때 대출을 받겠다고 답했다.
이들이 기본대출에 긍정적인 건 고신용자 중심으로 돈을 빌려주는 기존 금융권 대한 불신·두려움 때문이다. 정아무개(25)씨는 “또래 청년들은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다면 (문턱이 높아)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큰데 정부에서 빌려준다고 하면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아무개(31)씨도 “사회초년생이나 저신용자여서 금융혜택을 못 받는 이들에게 저금리 소액대출 기회를 준다면 일시적인 어려운 때문에 영원히 재기하지 못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청년에게 또 다른 굴레 아닐지”…반대 이유는?
기본대출에 반대하는 정아무개(30)씨는 정책 설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경제활동의 기본은 적은 돈이라도 관리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뒤 돈 쓸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돈을 먼저 벌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돈을 먼저 빌려쓰고 갚게 된다면 청년들이 대출을 쉽게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기본대출과 한쌍인 기본저축을 일정기간 이용한 경우 기본대출을 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기본저축은 국민 누구나 일정액(500만~1천만원) 한도로 저축하면 일반 예금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본대출 재원으로 쓰면서 국민의 재산 형성을 도우려는 취지다. 기본대출과 기본저축이 이 후보의 ‘기본금융’ 공약이다.
대출 경험이 없다는 장아무개(29)씨도 ‘묻고 따지지 않는’ 기본대출에 부정적이었다. 그는 “전세자금대출, 학자금대출도 아니고 자유롭게 대출해주는 게 청년에게 굴레가 되지 않고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막연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후보는 지난 7일 서울대 강연에서 ‘경기도지사 시절 시행한 청년 기본대출의 효과가 입증됐냐’는 학생 질문에 “시행한 지 2년밖에 안 돼서 검증은 현재 불가능하다. 대출 형식의 복지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중이라고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씨는 “청년에게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안전한 돈이 필요하다. 대출이 아닌 저축을, 저축을 할 수 있는 일자리 제공이 우선돼야 한다. 대출은 복지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 기본대출이 복지가 되려면?
기본대출이 돈 갚을 능력이 있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된다면 효과를 의심하기 어렵다. 하지만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또다시 돈을 빌려주는 건 채무만 가중한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에 쓰여 자산 거품을 부추길 수 있다. 이 후보는 지난 8월 공약 발표 당시 “천만원을 안 갚으려 신용불량을 감수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도덕적 해이가 불가능한 금액으로 천만원 정도를 최대치로 잡았다”고 말했다.
기본대출과 비슷한 서민정책금융상품이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지난해 발표한 ‘정책서민금융상품에 대한 평가와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햇살론 대출을 이용한 사람이 다시 고금리 대출도 받아 신용점수가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는 “기본대출이 복지가 되려면 자활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줘야 한다”며 “처음 고금리에서 시작해 원금을 갚을수록 이자를 줄이는 방식이라든지 대출자가 빚을 갚아나갈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본대출이 시행되면 1천만원 빌려주던 시장이 죽을 텐데 그렇게 해서 사업을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현재 금융불균형은 담보 위주의 편한 대출을 하는 은행의 관행 탓이 크므로 정부가 은행간 금리 경쟁을 촉진하고 고리대금을 단속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 대출보다 중요한 건 금융교육
이 후보는 기본대출 금리가 고신용자들이 내는 이자 수준보다 다소 높게 정해지기 때문에 고신용자들이 더 비싼 이자로 빌려갈 이유가 없다고 한다. 연 10% 이상 내던 금리를 3%로 낮춰주면 부실률이 낮아지고 평생 한 번만 기본대출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부담도 크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경제 상황이나 기술 발달을 고려하면 청년들은 과거에 비해 돈 빌리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 코로나19 이후 생활비 마련이든 자산 투자 목적이든 청년층의 대출은 크게 늘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대 다중채무자(2개 이상 금융사에서 대출)는 지난 6월 기준 83만4천명, 대출잔액은 47조6512억원이다. 2019년 말에 비해 각각 12%, 36% 증가했다.
구문정 청년금융복지지원센터장은 “핀테크 기술에 적응한 청년들은 은행에 가는 걸 어려워하고 사금융에 먼저 빠진다.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처럼 다른 데(사금융)도 똑같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 센터장은 “이런 상황에서 기본대출은 안전한 대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본인 소득 범위에서 돈을 활용하는 실질적인 방법과 미래설계를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재무역량 강화와 함께 금융복지서비스가 함께 병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본대출을 찬성한 이들도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고 기반을 닦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금융교육이 함께 제공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