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은행에 붙어있는 대출 및 예금 관련 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지난 7월부터 은행권 정기예금(만기 1년) 금리와 기준금리 사이의 금리 차이가 커지기 시작해 최근 2.0%포인트가량까지 벌어지는 등 예금 금리가 크게 오르고 있다. 은행들이 예금 금리 상승으로 조달 비용이 늘어나자 과도하게 대출 금리도 올리면서 예금상품과 대출상품을 매개로 ‘부의 재편 및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유층 사이에서는 부의 재편이 일어나고, 소득과 자산을 두고 계층 간 부의 양극화도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8일 기준으로 전체 은행권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평균 연 4.83%(복리, 최고우대 금리 적용)로 한국은행 기준금리(3.25%)에 견줘 1.58%포인트 높다. 개별 상품으로는 이달 들어 1년 정기예금 금리가 5%대를 넘은 것도 많은 터라, 격차가 약 2.0%포인트에 이른다.
기준금리와 예금 금리 차이는 기준금리가 연 0.5~1.75%이던 2020년 3월부터 올해 7월 초까지만 해도 0.4%포인트 안팎을 유지했다. 그러나 한은의 기준금리 빅스텝(7월13일 연 2.25%) 이후 예금 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하면서 7월28일 0.95%포인트로 벌어지더니 9월부터는 1.50%포인트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과거에 기준금리와 정기예금 금리 격차는 0.4%포인트 정도를 유지했는데, 올해 7월부터 은행권의 자금 조달 경쟁 등 자금시장 교란 요인으로 인해 정기예금 금리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영증권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은행이 단기자금 차입을 위해 발행하고 주로 부유층이 단기상품으로 투자하는 양도성예금증서(91일물) 금리도 7월1일 연 2.05%에서 연일 상승해 지난 28일엔 4.03%로 급등했다. 양도성예금증서 금리가 연 4.0%를 넘어선 것은 200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양도성예금증서(가입 금액은 1천만원 이상 무제한)를 활용한 자금조달도 늘어나면서 지급 금리가 날마다 뛰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이 금융당국 요청으로 또 다른 대출자금 조달 수단인 은행채 발행을 자제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도미노 풍선효과’인 셈인데, 은행채가 막히자 대신에 공격적 예금 수신 경쟁이 확산되면서 정기예금 및 양도성예금증서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문제는 예금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대출 금리도 따라서 뛰고 있다는 것이다. 정기예금 금리는 은행의 대출 조달 재원이면서 대출이자 산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기준 4대 시중은행(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5.28∼7.80%에 이른다. 대출 금리가 예금 금리보다 더 많이 오르면서 올 3분기 말 잔액 기준 국내 은행의 평균 예대금리차는 2.46%포인트로 2014년 2분기(2.49%포인트) 이후 8년여 만에 최대치를 나타냈다. 이 연구위원은 “정기예금 금리가 상승하면서 가계·기업·자영업자의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민간의 대출 금리 부담은 이미 기준금리를 수차례 더 인상한 것과 같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고액자산 예금자와 가계·자영업 대출자 사이에 ‘금융상품을 통한 부의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높은’ 예금금리 제시를 앞세운 은행권 수신경쟁은 기준금리 인상에 더해 기업의 금리 부담 고통도 더욱 키우고 있다. 은행권이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기업의 단기자금조달 상품인 기업어음(CP·91일물) 금리는 연일 급등해 지난 7월1일 연 2.33%에서 11월28일 연 5.51%(연중 최고)까지 올랐다. 기업의 금리 비용 상승은 국민경제 전체에 고용·소득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게 된다.
신영증권은 “민간의 이자부담에 가산되는, (국고채 시중금리 이상의) 신용스프레드가 과도하게 높아지고 있다”며 “금융당국 정책은 채권시장에 대한 전면적 지원 역할을 떠맡은 은행권의 꼬리(예금금리 경쟁적 인상 등)가 금융·경제 전체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 현상’을 경계하고 신용 가산금리를 빠르게 안정시키는데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