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AFP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또 다시 감속 페달을 밟았다. 미국 인플레이션이 둔화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도 일부 인정했다. 다만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매우 이르다”며 당분간 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문제는 시장이 연준의 메시지를 ‘연내 금리 인하설’에 힘을 싣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향후 시장의 기대가 좌절될 경우 금융 불안의 후폭풍이 밀려올 가능성이 작지 않다. 정부와 한국은행도 이런 리스크에 대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미국 물가 둔화했지만…“당분간 인상 계속”
미 연준은 1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연방기금금리 목표범위를 연 4.25~4.50%에서 4.50∼4.75%로 0.25%포인트 올렸다고 밝혔다. 새해 첫 회의에서도 속도 조절을 이어간 것이다. 연준은 지난해 4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뒤 12월 0.50%포인트로 인상 폭을 축소한 바 있다. 이번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물가 상승률의 하락)의 조짐이 좀더 분명해진 데 따른 분위기 변화가 뚜렷했다. 통화정책 결정문에서 위원들은 “인플레이션이 다소 완화했으나 여전히 높다”며 지난해 이후 처음으로 ‘완화’(ease)란 표현을 썼다. 제롬 파월 의장도 기자회견에서 “디스인플레이션의 과정이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새해 들어 본격 확산됐던 물가 둔화에 대한 기대를 연준도 일부 긍정한 셈이다. 지난해 6월 9.1%로 치솟았던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꾸준히 하락세를 그려 12월 6.5%까지 내려온 바 있다.
다만 서비스 물가의 상승 압력에 대한 연준의 경계심은 여전했다. 그는 “근원 물가에서 56%의 가중치를 차지하는 항목(주택 임대를 제외한 서비스)에서는 아직 디스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이 항목의 상승률은 아직도 4%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불균형이 이어지면서 임금이 올라 서비스 물가도 뛸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봤다. 최근 임금 오름세는 둔화했지만, 지난달 빈 일자리 수가 다시 증가하는 등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완화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때문에 다음달에도 연준의 금리 인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위원회는) 계속된(ongoing) 인상이 바람직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문구는 이번 통화정책 결정문에서도 빠지거나 수정되지 않았다. 파월 의장은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매우 이르다”며 “위원들은 두어 번 정도의 추가 인상을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기와 물가 등이) 기존 전망과 대체로 부합한다면 올해 금리를 인하하는 건 적절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앞서 연준이 제시한 올해 말 정책금리 예상치(5.00∼5.25%)를 조정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연준-시장 ‘치킨게임’에 불똥 튈라…한은 “예의주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연준과 달리 시장은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다. 특히 연준의 ‘디스인플레이션’ 언급이 시장에 확산돼 있는 ‘연내 금리 인하설’의 장작 역할을 했다. 이날 한때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 올해 말 정책금리 상단 전망치(확률 가중평균)는 하루 전보다 소폭 하락한 4.58%를 기록했다. 뉴욕 증시의 주요 주가지수도 2% 오른 나스닥 지수를 중심으로 모두 상승세를 보였다. 채권 가격도 대체로 오름세를 나타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3.42%로 하루 만에 0.09%포인트 빠졌다.
연준과 시장이 일종의 ‘치킨게임’에 접어든 형국이다. 양쪽 간의 시각 차가 커지면서 향후 금융 불안이 급격히 심화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연준이 예고한 금리 인상 경로가 시장에 반영돼 있지 않은 탓이다. 연준이 올 한해 통화긴축 기조를 이어가면서 시장의 기대가 좌절로 끝날 경우, 채권 금리가 급등하고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해 혼란이 가중될 공산이 크다. 시장에서도 연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이런 리스크를 감안할 것이라는 기대를 일부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준도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를 매만지는 데 있어 한층 신중해진 분위기다. 기자회견에서 시장금리 하락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파월 의장은 미리 준비해온 답변을 읽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전반적인 금융시장 여건이 계속해서 통화긴축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한국 금융시장도 리스크가 한층 커졌다는 평가다. 일단 외환시장에 대한 우려가 높다. 미국 정책금리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급하게 재조정되면 원-달러 환율이 재차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은 잭슨홀 회의 이후 연준의 통화긴축 강도에 대한 기대치가 빠르게 상향 조정되면서 1400원대까지 치솟은 바 있다.
외국인 자본 유출을 둘러싼 리스크도 여전하다. 금융위원회 집계를 보면, 지난달 말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채권 보유 잔액은 약 222조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원 넘게 내려앉았다. 한-미 정책금리 역전으로 내외금리차도 마이너스를 이어가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차익거래 유인이 축소된 영향이다. 지난달 1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내외금리 역전 등의 영향으로) 자본거래 측면에서의 외환 순유출 압력은 높을 것으로 보인다”는 발언이 나왔다.
정부와 한은은 긴장 태세에 들어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금융·경제당국 수장들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연준과 시장 간의 인식 차가 당분간 지속될 경우 향후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부문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따라 적기에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도 “자본 유출입 등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워싱턴/ 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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