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차명계좌에 숨겨온 4조4천억원대 재산에 대한 증여세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에선 이 회장이 증여세만으로 내야 할 세금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08년 조준웅 특검이 적발한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가운데, 2001년 이후 개설된 증권 차명계좌의 경우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이 이날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삼성 특검 관련 실명확인의무 위반 계좌 현황’을 보면, 이 회장은 1987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증권 등 금융기관 10곳에서 1021개의 차명계좌를 뒀다. 이 가운데 2001년 이후 개설된 증권 계좌는 총 492개(삼성증권 464개 등)에 이른다.
박 의원이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속·증여세법에서 정하고 있는 ‘명의신탁 재산의 증여의제’ 조항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은 주식처럼 등기나 명의개서가 필요한 재산의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엔 명의자가 그 재산을 실소유자에게서 받은 것으로 간주해 증여세(최고세율 50%)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소유권이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조세 회피 등 부당한 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명의신탁을 한 데 대한 벌칙성 세금을 물린다는 취지다. 박 의원은 “증여의제 조항이 도입된 시점과 소멸시효(15년) 등을 감안하면 2001년 이후 만들어진 이 회장의 차명 증권계좌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2008년 이후 해당 주식을 본인 명의로 전환했다. 실명 전환 주식 가운데 전자와 생명 주식만 따져보면, 각각 224만여주(6조6749억원, 30일 종가 기준), 323만여주(4202억원)에 이른다.
현재로선 이 회장이 내야 할 증여세를 정확히 추산하긴 어렵다. 도마에 오른 492개 계좌에 든 주식 가치를 정확히 산정할 수 있는 자료가 외부에 공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상속·증여세법은 같은 주식이 여러 사람 계좌로 계속 옮겨가는 형태로 명의신탁이 반복적으로 이뤄질 경우에는 명의신탁이 이뤄질 때마다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회장이 삼성생명 등 계열사 주식을 다수의 임직원 명의로 갈아타는 방식으로 관리해왔다면, 사실상 주식가액 대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는 셈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이 회장은 2008년 특검 이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누락된 세금이라며 증여세 명목으로 4515억원을 납부했지만, (상증세법상) 증여의제 조항에 따라 과세가 됐다고 보기에는 납세액 규모가 너무 작다”며 “과세당국이 지금이라도 이 회장의 차명계좌 운용 실태를 면밀하게 파악해 추가 과세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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