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시중은행에 저리로 공급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 가운데 ‘부적격 대출’이 하루 평균 263억원(잔액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은이 사소한 규정 위반엔 해당 은행의 대출 규모를 감액하는 등 제재를 가하면서, 낮은 금리로 빌려간 뒤 중소기업엔 일반 금리로 대출한 사기성 행위에 대해선 제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경협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은에서 받은 ‘금융중개지원대출 관련 위규대출 현황’을 보면, 시중은행 17곳의 올해 상반기 규정 위반 금융중개지원대출 규모는 하루 평균 262억8천만원에 달했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한은이 시중은행에 0.5~0.75% 수준의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줘 시중은행이 그만큼 싼 금리로 중소기업에 대출하도록 하는 제도다. 평소 중소기업대출 실적 등을 고려해 25조원 이내에서 은행별 한도가 배정된다.
한은은 내부 규정에 근거해 중소기업 분류착오·폐업·중도상환 보고지연 등 위규(규정위반) 대출 사례가 확인되면, 해당 은행에 배정된 대출 한도를 최대 2.5배 줄이는 식으로 제재를 가해왔다. 전체 규정위반 대출 규모는 2014년 1608억원, 2015년 933억원, 2016년 295억원, 2017년 506억원, 2018년 상반기 263억원 등이다.
문제는 제재 형평성이다. 감사원은 올해 한국은행 기관운영감사 때 산업은행이 한은에서 받아간 중개대출 자금 7799억원(올해 3월 말 기준) 가운데 6%인 1900억원에만 낮은 금리를 적용하고, 나머지 94%에는 더 비싼 일반대출 금리를 적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2014년 11월~2018년 3월 사이 산업은행이 챙긴 자금조달 차익이 140억5천만원에 달한다”며 “한은 총재는 앞으로 금융중개지원대출 자금의 저금리 혜택이 중소기업 대출 금리인하로 연계되지 않고 은행의 이익으로 귀속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며 주의 조치했다.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정책자금 취지를 악용한 중대한 경우지만, 정작 한국은행의 제재는 없었다. 한은이 정한 규정 위반에 해당하지 않아 제재 권한이 없다는 게 이유다. 한은 박종석 통화정책국은 “금리 자유화가 돼 있는 만큼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해주면서 실제 중소기업 대출 때 금리까지 정해주는 것은 무리”라며 “금융중개지원대출이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의미도 있지만, (한은이 돈을 대주는 만큼) 더 쉽게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한은으로부터 시중보다 싼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놓고도 중소기업엔 고금리로 대출해 부당한 이자 차익을 거뒀다면, 당연히 이를 환수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산업은행의 부당 이득을 환수할 수 있는지, 협의 중에 있다”고 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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