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지난해 9월 국내 헤지펀드 업계 1위인 라임자산운용(라임)의 1조5천억원대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지자 이 운용사를 하루 단위로 점검했다. 돈을 빼돌리는 일이 벌어지면 투자자 피해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당시 운용사 쪽은 부실 펀드의 환매에 대응하기 위해 정상적인 펀드의 자산을 부실 펀드로 이전하는 자전거래를 시도할 움직임을 보였다. 이른바 ‘펀드 돌려막기’ 행태로, 나중에 잘못되면 정상적 펀드의 자산마저 동반 부실화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금감원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자본시장법에는 엄연히 환매 대비용일 경우엔 자전거래를 허용한다고 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당시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막으면 법으로 허용돼 있는데 왜 못 하게 하느냐고 할 게 뻔했다. 환매를 금감원 때문에 못 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당시 정상적 펀드였던 라임의 ‘크레딧 인슈어드 펀드’(설정액 2900여억원)도 부실화돼 올해 1월 이마저 환매중단했다.
이는 헤지펀드들의 편법이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금융감독당국이 어찌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2011년 ‘한국형 헤지펀드’(전문 사모펀드) 도입 이후 역대 정부는 헤지펀드 설립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투자내역 등에 대한 사전보고 의무는 대폭 간소화하는 등 규제 완화로 치달았다. 혁신적인 자본시장을 육성하기 위해선 최대한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에 힘입어 헤지펀드 시장 규모(순자산 기준)는 2015년 2조원대에서 2019년 35조원대로 급팽창했다. 하지만 감독당국이 헤지펀드의 활동 내용을 거의 모르는 ‘깜깜이’ 상태에서 금융회사들은 편법·불법까지 동원해 돈잔치를 벌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라임에 이어 헤지펀드 업계 5위인 알펜루트자산운용까지 지난달 펀드 환매중단을 선언하면서 사태가 더 확산되고 있어 통제장치 없는 헤지펀드가 되레 자본시장을 망가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설립된 라임은 초창기엔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내는 헤지펀드로 입소문을 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2017년쯤엔 1억원을 투자하면 2천만원의 수익을 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2~3년간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라임의 펀드 설정액은 2016년 말 2446억원에서 2018년 말 3조6226억원, 2019년 7월 5조8672억원까지 급증했다. 돈이 밀려들어오면서 수익을 낼 만한 투자 대상을 찾기 어려워지자 부실 가능성이 높고 환금성이 낮은 비상장사 채권이나 무역금융 등으로 투자 범위를 넓혔다. 예컨대, 무역금융 펀드의 경우 일부 운용사는 이미 2017년께 수익이 나지 않자 철수를 시작했으나 라임은 오히려 대상 지역을 남미·북미,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했다. 라임은 무역금융의 일부 투자자산이 부실인 줄 알면서도 판매를 지속해 현재 사기 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라임의 운용 책임자인 이아무개 전 부사장은 이 과정에서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투자방식을 사용했다. 모펀드 아래 수십개의 자펀드를 두는 이른바 ‘모자형 펀드’를 도입해 변칙적으로 운용한 것이다. 환매중단된 모펀드는 4개, 그 아래 자펀드는 173개였다. 실질적으로는 공모상품인데 규제를 피하고자 투자자를 50인 미만으로 모집하는 사모펀드 형식을 차용한 셈이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는 전형적인 공모규제 회피에 해당하는데 이것도 현행법상 우리가 막을 방법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전 부사장은 모자형 펀드로 펀드 외형을 키운 뒤, 증권사(프라임브로커)에서 이 펀드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추가로 돈을 끌어모아 투자 규모를 늘렸다. 이렇게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방식은 시장 환경이 양호할 때는 급성장의 동력이 되지만, 반대 상황에선 큰 위험(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위험이 큰 투자 행태를 통제할 장치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애초 한국형 헤지펀드를 도입하면서 감독은 완화하는 대신에 대형 증권사를 프라임브로커로 지정해 헤지펀드에 대한 종합적인 위험관리를 하도록 틀을 짰다. 프라임브로커는 헤지펀드에 자금 대출뿐 아니라 위험 분석, 매매 체결, 투자자에 대한 보고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담 중개업자를 말한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라임과 알펜루트에 대해 증권사들은 프라임브로커로서 위험관리 역할은 거의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금 대출로 짭짤한 재미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신한금융투자·한국투자·케이비(KB)·미래에셋대우·삼성·엔에이치(NH)투자증권 등 모두 6곳이다. 라임의 경우 신한금융투자·케이비·한투증권이 총 6700억원 규모의 티아르에스 대출을 해줬다. 이 대출은 다른 투자 고객보다 먼저 상환받을 수 있는 우선청구권을 보유한다. 라임의 환매중단된 1조6679억원 규모의 펀드 손실률이 50%라고 가정할 경우, 남는 자산 8천여억원 중 증권사가 6700억원을 먼저 가져가면 남은 자산은 1천억원대에 불과하다. 증권사는 대출금을 모두 회수하는 반면, 일반 투자자들만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미 증권사들은 이자수수료 명목으로 ‘시디(CD)금리+1~3%’를 매겨 수백억원대 이익까지 챙겼다. 증권업계의 한 고위 임원은 “자금 대출을 해준 ‘티아르에스 증권사들’은 라임의 상품 설계부터 개입해 채권자라기보다는 사실상 운용자라고 봐야 하는데 사태 이후에는 손실 분담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정부가 자율에 맡겨놨더니 자신들의 탐욕만 챙기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에 관여했던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프라임브로커에 헤지펀드를 인큐베이팅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겼는데 헤지펀드의 투자 전략이나 투자 대상의 적합성 점검 등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 시장의 실패”라고 말했다. 그는 “헤지펀드의 자율적 운용이라는 기본 방향은 맞지만, 우리는 외국과 달리 레버리지 비율이나 비유동성 자산 투자 등 세부 내역을 감독당국에 보고하지 않아 투명성이 약한 게 문제”라며 “외국처럼 보고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헤지펀드와 프라임브로커도 최종 고객을 보호해 신뢰를 얻는 투자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라임자산운용은 환매중단 모펀드 2개 및 자펀드에 대한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가 최근 나옴에 따라 투자자들의 예상 손실을 오는 14일 공개할 예정이며, 금융당국도 이날 관련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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