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1500선 아래로 내려가고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딜링룸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국내 금융시장이 급기야 ‘공황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국제 단기자금시장 불안으로 달러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환율 급등→외국인 주식 매도→주가 하락·환율 급등이라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1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 있던 2009년 7월 수준까지 폭등했다. 환차손을 피하기 위한 외국인의 자금 이탈로 코스피는 10년8개월 만의 최저치로 폭락했다. 현재 4천억달러(512조원)가 넘는 세계 9위의 외환보유고가 더 이상 금융시장의 안전판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외환보유액이나 대외부채 등 대외건전성은 양호한 편이었지만, 단기성 자본 유출로 원화가치가 급락했다. 최근 원화가치와 주가의 하락폭이 아시아 주요국보다 크게 나타나는 데는 국내 증시의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달러가 급한 외국인들의 현금인출기 구실을 하는 셈이다.
18일(현지시각) 주요 6개 통화와 견줘 미국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지수는 100을 돌파하며 2017년 3월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날 뉴욕 금융시장에서는 경기침체 공포로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최후의 피난처인 ‘달러 현찰’ 확보에 나서면서 국채와 금을 포함한 모든 자산 가격이 급락했다.
돈값인 금리의 인하는 해당 통화가치의 약세 요인이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에만 두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5%포인트나 내렸는데도 시장에서는 오히려 달러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이른바 ‘달러 스마일’ 현상 때문이다. 달러는 미국 경기가 상대적으로 호황일 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처럼 강세를 보이지만, 지금처럼 극도의 위험 회피 현상이 발생할 때도 반대편 입꼬리가 올라간다. 골드만삭스는 “기축통화인 달러가 세계경제와 금융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달러 수요 폭발은 코로나19 사태로 단기자금시장의 유동성이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유가 급락으로 미국 에너지 기업이 발행한 투기등급 채권의 원리금 상환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고 이는 회사채 시장 전반의 유동성 경색으로 확산됐다. 경기 침체 국면에 들어서면 투자적격 마지막 단계(BBB등급)인 채권도 투기등급으로 강등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국 보험사와 연기금은 미 회사채의 절반가량(49%)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건전성이 위협받게 되면 금융 위기로 번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자금시장의 금리 상승은 달러 외채가 많은 신흥국에 위험신호다.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신흥국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커져 빚 상환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선진국과 견줘 신흥국의 신용위험도를 나타내는 신흥국 채권 가산금리(EMBI+)도 급등하고 있다.
국내 외환딜러들은 금융시장 안전판은 이제 외환보유액이 아니라 달러 통화스와프 협정이라고 보고 있다. 달러를 빌리고 대신 원화를 빌려주는 스와프(CRS) 금리는 최근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 달러를 조달하려면 추가로 이자를 더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일부 증권사의 달러 차입 수요 증가도 여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하나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 수출업체 등이 달러를 내놓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환율이 금융위기 당시인 달러당 1500원대까지 치솟을 가능성은 작다는 의견이 많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2008년 당시에는 급증했던 단기차입금 상환 압박에다 투기적인 외국인의 국내 채권 매도까지 맞물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한광덕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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