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오른쪽)이 2일 오전 인천의 전통상가 밀집지역인 부평 인근의 신한은행 지점을 방문하여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등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금감원 제공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맞아 대출여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시중은행들에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 성과급 지급을 자제할 것을 우회적으로 권고했다.
윤 원장은 2일 금감원 임원과 주요 부서장이 참석한 ‘위기대응 총괄회의’에서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 건전성감독청(PRA) 등은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에 배당금 지급, 자사주 매입, 성과급 지급 중단을 권고하고 글로벌 은행들이 동참하고 있다”며 “국내 금융회사들도 해외 사례를 참고해 충분한 손실흡수 능력을 확보하고 실물경제에 대한 원활한 자금공급 역량이 유지될 수 있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 원장이 은행들에 배당금 지급 등을 자제하도록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를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유럽 감독당국처럼 명시적으로 중단을 권고해야 한다는 쪽과 역효과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우회적으로 뜻을 전달하는 게 낫다는 두가지 견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금감원은 2019회계연도 배당은 이미 주총이 끝난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지만 올해 중간배당과 기말배당은 자제하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은행 경영진이 주가 방어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을 하는 것을 바람직하지만, 은행이 자기자본을 사용해 자사주 매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최근 한 은행은 자사주 매입을 내부적으로 검토했다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 보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유럽중앙은행은 지난달 말 유로존 19개국 은행들에 2019회계연도와 2020회계연도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 금지 조치를 발표했으며, 영국 건전성감독청도 대형은행의 현금배당, 자사주 매입, 성과급 지급 자제를 권고했다. 또한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은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은행이 대출여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국제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윤 원장은 근본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금융 규제의 한시적 완화 필요성을 밝혔다. 윤 원장은 “실물경제 자금공급이라는 금융의 본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유동성비율(LCR), 예대율 등 금융규제를 잠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구체적 지원 방안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FRB)과 유럽중앙은행 등은 은행들이 시장 변동성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대출 공급을 확대하도록 규제의 도입·적용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있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윤 원장은 회의를 마친 뒤 인천의 한 시중은행을 방문해 1일부터 시행 중인 정부의 금융지원대책을 점검했다. 윤 원장은 “코로나19 피해기업 등에 대한 지원을 위한 여신에 대해서는 검사도, 제재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