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 빗썸 강남고객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오전 7시 54분께 5790만원까지 떨어졌다. 연합뉴스
다단계 업체 ㄱ사는 암호화폐를 개발한 뒤 100만원 이상 현금을 내고 가입하면,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된 자사의 코인을 가입 선물로 지급한다. ㄱ사는 선물로 주는 코인이 거래소 평균단가로 계산했을 때 투자 원금보다 많아 손해볼 일이 없다며 회원을 모집했다. 그런데 막상 투자자들이 이 코인을 팔려고 하니 업체가 1년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해놓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투자자들은 코인을 매도할 수 있는 시점에는 상장 폐지되거나 가격이 턱없이 낮아질 수 있어 계약을 해지하려 했다. 하지만 ㄱ사는 “회원 등록 신청서에 ‘어떤 경우도 취소·해지·철회 등 일절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며 해지를 거절하고 있다.
‘코인 광풍’이 불면서 암호화폐를 통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아 자금을 편취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잇따른다. 지난 2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정부가 나서서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를 할 계획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23일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 따르면, 최근 자사 코인이 폭등할 것이라며 투자금을 모으는 등 사기 의심 거래 제보가 늘고 있다. 자체 개발한 코인이 상장되면 가치가 수천배 상승할 것이라며 자사 코인에 투자를 유도하거나, 코인을 미끼로 고가로 물건을 판매하는 경우 등이다. ㄴ업체는 자체 개발한 코인의 가치를 부풀리며 자사 화장품 및 건강기능식품 구입하면 할인금액만큼 코인을 주겠다고 홍보했다. ㄴ업체가 파는 물건의 가격이 시중보다 훨씬 비싼데다, 코인이 상장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돼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투자 원금을 암호화폐로 반복 투자해, 한 달 뒤 10배로 돌려주겠다”며 수백명에게 약 60억원을 편취한 ㄷ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최한철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 수사1반장은 “암호화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관련 지식이 없는 이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양 생각해 섣불리 뛰어들기 쉬우며, 중장년층이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암호화폐를 통한 사기 행위가 빈번하다. 최근에는 테슬라를 사칭한 트위터 계정이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한다”며 사용자가 비트코인을 보내면 두배로 돌려주겠다고 현혹해, 피해자들한테 비트코인을 편취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영국 비비시(BBC)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만500명이 암호화폐 사기를 당했고, 피해금액이 총 1600만달러(179억원)에 이른다. 올해 3월까지 벌써 5600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피해금액도 1800만달러(201억원)에 달한다.
암호화폐를 미끼로 한 범죄가 극성을 부리자, 세계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지난달 ‘흔한 암호화폐 사기 5가지’를 안내했다. 소셜 미디어에서 암호화폐를 보내면 몇배를 돌려준다고 꾀는 ‘소셜 미디어 증정 이벤트 사기’, 다단계 및 폰지 사기, 악성 앱을 깔아 사용자의 자금이 암호화폐 지갑이 아닌 사기꾼의 주소로 전송되는 ‘가짜 모바일 앱 사기’, 믿을 만한 사람으로 가장해 피해자의 암호화폐 관련 정보를 빼내는 ‘피싱’, 투자수익률을 약속하는 사기 등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