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주권, 알아야 누린다] (4) 권력의 디지털 개입 주의보
사회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대중은 점차 감시와 통제에 익숙해져 간다. 지난해 어린이집 학대 사건을 계기로 어린이집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의무화 법을 요구하는 것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사진은 원내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을 원거리에서 보기 위해 인터넷에 연결했다가 한 해커에 의해 지난해 누구나 볼 수 있는 한 누리집에 공개되었던 어린이집 모습이다. 인터넷 갈무리
기술 발전으로 몰래 접근할 길 터줘
국경 없는 사이버 테러 국제 문제
감시 강화 정당성 제공 빌미도 현대 사회, 원인과 효과 관계 뒤집혀
자발적으로 기술의 통제 받아들여 대립하는 입장 사이에서 양쪽을 두리번거리는 디지털 시대의 국가가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수호자로서 의무가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에는 사회 안보를 이유로 범죄자를 색출·추적하기 위한 감시의 필요가 놓여 있는 셈이다. 단 후자의 경우 누구를 범죄자로 규정할 것인가가 권력자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민주국가는 더 큰 주의를 기울여 왔다. 이런 전통의 긴장 구도는 최근 기술에 의해 양상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우선 스마트폰처럼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는 기술의 등장이다. 사람들이 생성하는 데이터 양이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정부가 탐낼 만한 정보도 크게 늘었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휴대하다 보니 추적 대상자가 어느 시간에 어디에 있었는지 위치 정보를 파악하는 게 용이해졌다. 동시에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의 속성 때문에 정부가 다루어야 할 문제의 범위가 국제적이 됐다. 사이버 테러 문제가 대표적이다. 최근 사이버 테러에 대한 강경 발언을 이어오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이를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국가 비상 상황’으로 규정했다. 범죄자들이 디지털 기술로 ‘스마트’하게 준비하는 것도 한 요소다. 감시를 옹호하는 쪽은 이를 따라잡기 위해선 더 강력한 기술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 국면은 대체로 ‘감시국가’ 쪽에 유리하다. 정보인권단체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의 카티차 로드리게스 국제권리팀장은 “과거 정부가 당신을 조사하려면 집에 와서 문을 두드려야 했다. 당연히 당신도 조사 과정을 보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 덕에 같은 일을 당신도 모르게 수행할 수 있다. 심지어 당신의 몸까지 수색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회에는 현재 사이버테러 방지법안을 비롯해 4개의 테러 방지법안이 상정돼 있다. 이들 법안은 모두 국정원장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두고 정보 수집을 강화한다는 핵심에서 같다. 하지만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는 변화가 있다. 그렇기에 더 근본적인 변화다. 폐회로텔레비전(CCTV) 기술은 국내에 1970년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일경제>는 1971년 10월21일치에서 서울시청 주변 교차로에 “우리나라 최초로” 폐회로텔레비전이 설치되었다고 전했다. 신기술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경향신문>은 1973년 7월30일치에서 서울 계성고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 설비가 얼마나 훌륭한 시청각 교육을 제공하는지 전하면서 “(이 학교는) 다른 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폭넓게 확산되면 기술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두려움도 커진다. 1997년, 당시 서울 강남의 유명 백화점이었던 그레이스백화점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고객을 잡겠다며 여자화장실에 폐회로텔레비전을 설치했다가 거센 질타를 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사이 이 기술에는 ‘감시’와 ‘불쾌’의 이미지가 붙어버렸다. 지난달 6일 국회 앞에는 성난 학부모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지난해 어린이집 학대 사건의 대책으로 나온 폐회로텔레비전 설치 의무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이들은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잘못을 했을 때 증거가 되는 장치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인권이란 핑계로 반대를 하는 것”이라며 “4월 이후에도 법안이 통과 안 될 경우 반대를 한 의원들을 상대로 낙선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폐회로텔레비전 기술은 어느덧 뚜렷한 증거를 통해 문제와 갈등을 해결할 기대를 받는 위치에도 오른 것이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전통적인 원인과 효과에 대한 관계가 뒤집히는 것이 현대 정부의 ‘획기적인 변화’라고 지적했다. “둘 사이 관계가 역전되면서 국가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인 원인을 고치려 하기보다 간단하게 결과를 다스리려는 쪽으로 변해왔다.” 어린이집 학대 사건의 경우, 해결책으로 제반 원인을 고치는 먼 길을 가기보다 감시 시스템을 통해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을 택하는 식이다. 민주국가에서 국가의 통제와 감시의 수준은 주권자인 국민의 합의를 통해 결정된다는 게 원칙이다. 대중이 좀더 자발적으로 기술에 의한 통제를 받아들이게 되는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고 삶 속에 스며든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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