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주권, 알아야 누린다] ⑤ 슈퍼파워 인터넷의 규약은 어떻게
강남 유명 ㅈ성형외과에서 일어난 ‘수술실 생일파티’ 사진.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논란이 되었고 방송사 뉴스에서도 다루는 등 지난해 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13일 포털 네이버에서 해당 ㅈ성형외과를 검색한 첫 화면의 모습. 검색창 바로 밑에는 해당 성형외과의 광고 등이 떠있고, 아래로 ‘뉴스’, ‘카페’, ‘블로그’ 등의 항목을 보아도 대부분 칭찬 글 일색이다. 임시조치를 통해 부정적인 글을 지우고, 광고업체를 고용해 좋은 글이 노출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인터넷, 트위터 갈무리
정부 검열 ‘논란’ 끊이지 않고
개인이 권리 침해됐다며
법률 따른 삭제 요청땐
포털쪽이 30일간 차단 ‘임시조처’
성형외과 파티사진도 가려져 권리침해 여부 심사는 소홀
특정계층 ‘임시조처’ 악용 늘어 우선 정부가 관리한다. 아동음란물이나 불법 도박, 마약 거래같이 법률에 따라 제한된 표현물에 대한 정부 개입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만화 서비스 레진코믹스에 대한 차단 논란에서 재현됐듯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라는 기관이 국민이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방식은 인터넷 검열에서 늘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국내 인터넷엔 방심위 못지않은 편집권력이 있다. ‘임시조치’다. 방심위의 지난해 시정 건수는 모두 13만건이었는데, 임시조치로는 34만개의 글이 사라졌다. 임시조치란 블로그 글과 같은 표현물에 대해 누군가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 인터넷사업자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게 30일간 차단하는 조치를 말한다. 임시조치 자체는 일정 기간 차단 처분이지만, 현실은 ‘삭제 조치’로 작동한다. 임시조치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44조의 2는 누군가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 “즉시 삭제 또는 임시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장이 사실인지를 검증하지도 않고, 권리가 실제로 침해되었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게시자가 임시조치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누구 말이 맞는지 방심위에 가서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데, 보통의 경우 ‘당신은 명예훼손을 저질렀다’는 통보를 받고 시비를 가려보자며 심판대에 나서는 일은 쉽지 않기 마련이다. 인터넷에서 ‘맛집’은 많아도 ‘맛없는 식당’은 거의 검색되지 않는 이유다. 해당 업소가 불만스러운 후기나 소비자 평가에 대해 ‘임시조처’를 하는 게 배경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재단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더 큰 자원과 힘을 가진 이들은 유통되는 정보를 좀더 쉽게 조작할 수 있다. 2013년 9월 누리꾼 ㅁ씨는 임시조치 통보를 받았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분석을 모아놓은 1년 전의 글이었다. 그런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소망교회’가 딴지를 걸고 들어온 것이다. ‘(우리) 교회 출신에 대하여 과장·왜곡하고 있는 게시물’이라는 이유였다. 이 전 대통령은 소망교회의 전 장로다. ㅁ씨는 “난데없이 이상한 일”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ㅁ씨 생각과 달리 이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형 교회들은 교단과 주요 교인에 대한 온라인 평판 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임시조처를 악용하는 ‘인터넷 편집자’들은 정치인, 기업, 종교단체, 연예인 등 특정 계층·세력에 몰려 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공개한 임시조치 심의 사례를 보면 이런 이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인터넷은 애초 의도한 자유로운 생각과 정보의 유통보다 소수가 원하는 생각과 정보가 널리 퍼지는 통로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위기감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팽배한 상황이다. 26년 전 월드와이드웹(WWW)을 발명한 ‘인터넷의 아버지’ 영국의 팀 버너스리(60) 박사는 지난해 9월 런던에서 열린 ‘우리가 원하는 웹’ 축제에서 이를 경고했다. “인터넷이 커지면서, 대기업은 인터넷을 통해 여러분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감시를 통해 당신에 대한 어마어마한 정보를 알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정부와 기업이 열린 인터넷 공간을 침범할 유혹을 느끼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대량 감시에 대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를 계기로, 정보권력이 얼마나 소수에게 몰려 있고 비대칭적인지 세계는 알게 되었다. 이후 세계 시민사회와 유엔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다가올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막을 첫걸음은 사용자의 자각이다. 디지털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저술가 예브게니 모로조프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초기의 기대 덕에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자유로운 매체라는 인식이 아직도 강하다. 개인이 기술의 실체를 알고 싸움에 나서야 비로소 기술이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시민에게 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