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대표 송아무개(31)씨는 서로 다른 기업 3곳에게서 홈페이지 구축 업무를 수주했지만 지난달 초 발주가 모두 취소됐다. 코로나19로 고객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홈페이지 보수 작업이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송씨는 1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위약금을 일부 받기로 했지만 그 돈도 언제 받을지 알 수 없다. 고객사도 도산 직전이라 압박할 상황이 못 된다”고 했다. 송씨는 대출을 받아 퇴직금을 마련하는 조건으로 이달 말까지 직원 3명을 모두 내보내기로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수요가 위축되면서 디자인, 웹편집, 행사·교육 등 기업 서비스 관련 외주 업체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고객사들이 주요 생산활동을 제외한 부가 서비스 비용을 줄이려고 과제를 줄줄이 취소하고 있어서다. 일감이 떨어진 종업원수가 5명도 채 안되는 외주 전문 기업들은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도산할까 전전긍긍한다.
패션 및 카페 관련 유인물을 디자인하는 임아무개(30)씨는 “패션 쪽은 재고가 쌓였고, 카페에는 손님이 없다. 가맹사업부며 이벤트사업부도 새로 일을 시작할 형편이 못 돼 디자인 일감이 자연스레 줄었다”고 했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지아무개(31)씨도 매출이 줄던 회사가 이달 초 코로나19로 일감이 줄면서 도산했다. 지씨가 일하는회사는전체임직원 4명 중2명을내보냈다.
기업 임직원을 상대로 한 정기 교육도 줄줄이 취소됐다. 산업교육계 강사들의 강의 수수료로 지탱해 온 에이전시들의 타격이 특히 컸다. 최근 임직원을 5~10명 가량 보유한 일부 강사 에이전시도 이달 초 일감이 다 떨어지자 문을 닫았다. 안병돈 한국강사협회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최근 2개월 새 강의가 다 취소됐다. 다음달 업무계획을 짜고는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그나마 대기업과 거래하는 1차 협력사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동통신 3사와 현대자동차 등은 최근 동반성장을 마케팅 삼아 협력사들에 조기대금을 지급하거나 협력사들이 내야 할 대금의 결제 기한을 늘려주고 있다. 한 통신기업 관계자는 “한 해 예산계획을 세워 경쟁입찰을 받기 때문에 협력사와 맺은 계약을 중간에 파기한다든지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중견·중소기업 쪽 일감을 받아 오는 외주업체들은 고객사의 경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형편이다.
이런 흐름은 서비스업 외주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수요 위축이 장기화되면 청소, 시설점검업 등 인력 파견업이나 제조업 하청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로선 당장 생산활동과는 거리가 있는 서비스 부문을 줄이기 마련이다. 시설점검업 등 노동 집약 서비스는 물론 연구개발 활동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비용 절감 대상이 된다”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단기 자금 수혈에 모든 재원을 집중할 게 아니라 장기 수요 침체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그나마 지식서비스업은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제조업 공급사슬 가장 하단에 있는 외주 기업들은 매출처가 한두 곳 뿐이어서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며 “제조 대기업들이 산업 구조 변화와 코로나19를 계기로 구조조정에 나설 때 이를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장기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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