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직장인 이창희씨는 정보기기 5대를 사용한다. 스마트폰이 통화·문자메시지·메신저 송수신 및 인터넷 이용용과 게임·영화 보기용 등 2개다. 회사 업무는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PC)와 태블릿으로 해왔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집에 대형 모니터를 갖춘 컴퓨터를 설치했다. 출장·여행 때는 스마트폰 2대와 태블릿을 가져간다.
25일 게임 업계의 설명을 들어보면, ‘다 정보기기’ 사용이 가속화하고 있다. 사무실 컴퓨터, 재택근무용 컴퓨터, 게임용 컴퓨터, 업무·커뮤니케이션용 스마트폰, 게임용 모바일 기기, 출장 업무용 태블릿 등 용도별로 별도의 정보기기를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유저들의 기기 등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4년에는 기기 1~2대로 게임을 했던 데 비해 요즘은 3~5대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런 흐름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비대면(언택트) 문화를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잡으면서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의 용도가 많아지며 쓰임새 사이에 간섭이 일어나고, 재택근무로 업무·휴식·취미생활 공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일·휴식·취미생활을 정보기기로 분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도 ‘세컨폰’을 따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대기업 최고경영자, 연예인, 사기꾼 등이 그랬다. 하지만 목적은 달랐다. 전화 수신 거부, 수사기관 등의 통화내역 추적 회피, 동선 공개 방지 등의 목적이 강했다. 이른바 남의 이름을 도용해 개통된 ‘대포폰’을 쓰는 경우도 많았다.
요즘은 일·휴식·취미생활 각각에 집중하기 위해 다 정보기기를 쓰는 추세라고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재택근무 때는 집이 일터이고, 쉬는 공간이고, 취미생활 장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 가정에서는 공간을 분리하기가 어렵다. 또한 정보기기의 용도가 다양해지면서 간섭을 받을 때가 많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거나 영화를 보는데 메신저나 문자메시지 도착 알림이 뜨면 몰입감이 떨어진다.
게임 매니아들이 긴급재난문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한 게임 이용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게임 이용자에게 긴급재난문자는 재앙이다. 게임 이용 중에 긴급재난문자가 도착해 흐름이 끊긴 경험을 몇번 하면, 전용 모바일 기기를 따로 장만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거꾸로 일과 취미생활을 병행하는 수단으로 업무용과 취미생활용 정보기기를 따로 쓰는 경우도 있다. 컴퓨터로 업무를 하면서 스마트폰은 게임을 자동 실행하게 하는 식이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요즘 모바일게임은 자동실행 기능을 갖고 있다. 게임 자동실행 기능을 실행시켜놓고 업무를 하다가 일이 끝나면 자동실행되던 게임을 넘겨받아 이어가는 식으로 일과 취미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체들은 이런 흐름을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이후의 새로운 일상(노 노멀)이 될 것으로 내다보며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는 모습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리니지2M’을 출시하면서 선보인 다 정보기기 크로스 플레이 서비스 ‘퍼플’을 최근 ‘리니지M’ 게임으로 확대했다. 이 게임 이용자들은 집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가 스마트폰의 해당 게임 앱을 켜면 ‘모바일에서 플레이’ 상태로 전환돼 지하철을 타고 가거나 약속 상대를 기다리며 게임을 이어가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다시 컴퓨터로 하던 게임을 이어갈 수 있다. 넥슨도 원더홀딩스와 합작법인을 만들어 개발할 차기 모바일게임에 크로스 플레이 기능을 넣을 계획이다.
엔씨소프트 김창현 실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사생활과 취미생활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업무와 휴식·취미생활을 분리하는 수단으로 다 정보기기를 사용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게임업체 쪽에서 보면 주요 이용자들”이라며 “이런 유저들을 겨냥해 크로스 플레이 서비스를 채택하는 추세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