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소폭 오름세로 장을 시작한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차트가 띄워져 있다. 이날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9시 46분 기준 비트코인은 6천500만원대에 거래가 됐다. 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 유예기간이 끝나는 오는 9월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국내 암호화폐(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모두 폐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 입에서 ‘거래소 폐쇄’라는 표현이 나온 건 2018년 이후 3년 만이다. 그는 암호화폐는 금융상품이 아니며, 암호화폐 투자자는 정부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그동안 ‘블록체인 기술은 진흥하되, 암호화폐 투기는 막는다’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특히 암호화폐는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의 일종으로 보고 제도권에 편입하지 않았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권고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자금세탁 방지 대상에 암호화폐를 넣는 내용으로 특금법을 개정하는 최소한의 조처만 했다. 정부가 규제를 만들면, 정부가 암호화폐를 승인했다고 받아들여져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두달간 글로벌 비트코인 가격과 ‘김치 프리미엄’ 추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최대한 언급을 피해왔던 정부가 최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배경에는 ‘김치 프리미엄’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국내외 가격차이를 말한다. 지난달 21일까지만 해도 김치 프리미엄은 4%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국내 암호화폐 매수세가 증가한 4월부터는 수치가 빠르게 상승해, 지난 7일에는 2018년 이후 최고인 22%를 기록했다.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글로벌 가격 대비 22% 비쌌다는 얘기다.
김치 프리미엄이 높아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이를 이용한 ‘재정거래’다. 국외 시장에서 싼값에 암호화폐를 사서, 국내 시장에서 비싼값에 팔아 차익을 얻는 것이다. 판매대금을 다시 외국으로 보내, 재정거래를 반복하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큰 투자 위험 없이 회당 10% 이상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특히 중국, 일본 등에 현지 은행계좌를 보유한 지인 등을 이용한 재정거래가 일어나기 쉽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 거주자와 비거주자가 올해 4월1~13일 5대 시중은행을 통해 중국으로 송금한 금액은 약 9760만달러(약 1100억원)에 달했다. 통상적인 월평균 중국 송금액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재정거래에 정부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개인 간 거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국부 유출로 볼 수 있다. 정부가 강력하게 관리하는 외국환거래를 건드린다는 점도 자극 요소 중 하나다. 회당 5000달러(약 560만원) 미만의 소액 송금은 사실상 적발해서 막기도 어렵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암호화폐 업계에 다단계가 성행하고 선량한 투자자들이 사기 피해를 볼 때는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았던 정부가 갑자기 거래소 폐쇄를 운운한 데는 해외 송금 급증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정거래를 막기 위해서는 선행 조건인 김치 프리미엄을 해소해야 한다. 가능한 방법은 두 가지다. 시장 수요를 줄여 매수세를 낮추거나, 암호화폐 공급을 늘려 매도 압력을 높이는 것이다. 후자는 시장주의적 해결 방식이지만 국부 유출을 가속하기 때문에 정부가 사용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정부는 암호화폐 열풍이 처음 불었던 2017년부터 줄곧 시장 수요를 줄이는 방식을 선택해왔다. 2018년 박상기 법무부 전 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강경 발언을 하자 글로벌 암호화폐 가격이 동반 폭락하기도 했다. 이번 은 위원장의 경고가 나오자 10%대를 상회하던 국내 거래소의 김치 프리미엄이 일시적으로 3% 선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이런 호통과 엄포에 의존하는 방식이 계속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지금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주류 암호화폐에 미국 기관투자자 투자금이 들어오는 등 암호화폐를 투자자산으로 보는 인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은 위원장 발언도 김치 프리미엄을 낮췄을 뿐, 글로벌 암호화폐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이미 투자된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자금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 7일 국내 거래소 업비트 한 군데의 일 거래액은 25조원을 기록했다. 같은 날 코스피(14조원)와 코스닥(11조원) 거래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일각에서는 ‘정공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금융당국이 시장 관리로 입장을 바꾸고, 암호화폐 시장에 국내 주식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과열 방지 제도만 도입해도 김치 프리미엄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거래를 해본 한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는 “전송 시 가격 하락 위험이나 수수료 등을 생각하면 김치 프리미엄이 3~4% 정도로만 유지돼도 재정거래를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가상자산업권법만 제대로 만들어도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행 특금법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를 3년마다 갱신하게 돼 있다”며 “거래소에 김치 프리미엄을 일정 구간 안에서 관리하게 하고, 이걸 일정 횟수 이상 벗어나면 신고를 불승인하도록 새로 제도를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김동환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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