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스스로 목숨 끊은 네이버 직원의 추모공간이 31일 회사 로비에 마련되어 있다. 성남/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지난달 2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이버 직원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구글’로 일컬어지는 아이티 기업들이 직장 갑질이 만연한 한국 기업 풍토에 새 문화를 제시해 주길 바랐던 이들을 중심으로 좌절감과 분노를 토로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내 대표 아이티 기업 네이버와 카카오에선 올 초부터 성과급과 조직문화 등을 둘러싼 사내 갈등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건은 ‘네이버와 카카오는 정말 자유롭고 수평적인 회사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한겨레>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전·현직 젊은 직원들에게서 그 답을 들어봤다.
“네이버는 이제 경직된 회사…카카오의 ‘신·충·헌’도 옛말”
“더 이상 수평적이지 않다.” 2014년 네이버에 입사했다가 현재는 카카오로 이직한 ㄱ씨(34)의 답은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아이티 업계에 몸담은 지난 8년 동안 아이티 산업이 양적 성장 속에 조직문화도 질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한다. ㄱ씨는 “네이버는 점점 조직이 경직되고 수직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며 “‘내가 알던 네이버가 맞나?’ 싶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 단적인 사례가 이번 사건”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도 점점 ‘카카오다움’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서로 신뢰하고 충돌하고 합의된 결과에 모두가 헌신한다’는 카카오의 핵심가치 중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충돌뿐인 것 같다”며 “(회사는) 직원들이 의견을 개진하면 들어주는 척만 하고 (직원들은) 바뀌는 건 없다고 느낀다. 직원들끼리는 ‘신·충·헌(신뢰, 충돌, 헌신)은 옛말’이라고 한다”고도 했다.
네이버 7년 차 기획자 ㄴ씨(30)도 “네이버가 점점 대기업으로 변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기보다는 재무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이 상명하달 되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취지다. ㄴ씨는 “실무자들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의사결정권자들이 정한 방향대로 움직이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와버리는 상황들을 몇 차례 겪었다. 실무자들이 의견을 내도, 위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지시하고 사업 내용이 확 바뀌는 일도 있다”며 “2010년대 중반 입사 당시에는 동료들과 정말 가족처럼 일했고, 빨리빨리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며 ‘치고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수직적인 기업에 속한 조직의 일부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고 털어놨다.
앱 출시 일정을 무리하게 당겨서 잡고, 결함이 많은 상태로 출시되어 평점이 떨어지면 업무 압박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도 있다고 한다. ㄱ씨는 “웹툰처럼 이제 막 시장을 개척하는 서비스들은 덜 하지만, 이미 시장이 형성된 서비스들은 기존 사업자들이 ‘점유율 나눠 먹기’를 해야 해서 담당자들의 스트레스가 더 크다. 모든 영역에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서비스 경쟁하는 상황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끼리끼리…친소관계가 바탕이 되는 의사결정도 만연”
이들은 이번 사건의 주요 배경으로 꼽히는 ‘끼리끼리 문화’도 실제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네이버 직원들은 여러 차례 문제 제기가 있던 인물이 임원으로 채용되면서 이번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ㄴ씨는 “이전 부서에서 문제가 있는 인사가 내부 인맥 덕분에 조직장으로 오는 일을 겪었다”며 “친소관계를 바탕으로 문제 인물이 의사결정권자가 되는 일은 네이버의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모두 경험해본 ㄱ씨도 “두 회사 모두 창업자와 가까운 이들이 친소관계에 의해 임원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창업자 패밀리’로 여겨지는 이들이 요직에 앉는 일을 볼 때 의구심이 들곤 한다”며 “대외적으로 (회사는) 일을 잘해서 자리를 맡겼다는 설명하지만, 정말 인사이트와 비전이 있는 사람인건지 물불 안 가리고 사람을 쥐어짜서 성과를 냈던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업무 압박을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 직원의 추모공간이 경기 성남 분당구 네이버 본사 1층에 마련된 31일 한 직원이 꽃을 들고 추모공간으로 향하고 있다. 성남/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네이버는 최근 이해진 창업자를 중심으로 하는 ‘이너서클’의 충성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휘영(YTN 출신), 김상헌(판사 출신)씨 등 이전 대표는 외부 인사라 창업자 그룹과의 긴장 관계를 가지며 일을 했는데, 이해진 창업자가 발탁한 내부 인사인 한성숙 대표이사가 취임한 뒤로는 창업자와 가까운 경영진들의 힘이 더욱 세지고 있다는 얘기다. 카카오는 회사 곳곳에 포진한 김범수 이사회 의장의 ‘패밀리’가 ‘실세’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다.
학벌주의 지적도 있다. 아이티 업계는 개발자는 서울대·카이스트·포항공대 출신이, 기획자는 서울대 출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서 채용이나 인사를 할 때 이들 학교 출신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임원이 아닌 실무진 수준에서도 친소관계에 의한 의사결정이 너무 자주 이뤄져 문제라고 느꼈다는 전직 카카오 직원도 있었다. 카카오의 한 계열사에서 근무하다 1년 만에 퇴사한 ㄷ씨(28)는 “특정한 사업을 맡을 담당자로 입사했는데, 막상 출근을 해보니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바뀌었다. 그 이후에도 사업 내용이 수시로 변했다. 알고 봤더니 대표와 그 주변 사람들이 비공식적으로 소통하면서 사업이 휘청이는 것이었다”며 “카카오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1년 동안 업무 성과를 쌓지 못하다 결국 이직을 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회사를 믿을 수 없다’는데, 회사는 ‘일할 사람 줄 섰다’”
두 회사가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네이버는 사내 문제 제기 창구인 ‘위드유’가 사실상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직원들 사이에는 “성희롱 등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위드유 제보보단 경찰 신고”라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ㄴ씨도 “회사 조직을 모니터링하는 제도나 기관이 무늬만 존재하는 상황이라 이 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ㄱ씨는 제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로 대부분의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아이티 업계는 너도나도 오고 싶어서 줄을 선 곳이죠. 그러다 보니 회사가 ‘일할 사람은 널렸으니 불만이 있으면 나가라. 얼마든지 대체 인력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직원들의 불만이나 문제 제기를 무시하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의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두 회사에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맡은 일을 즐겁게 열심히 하려는 직원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네이버, 카카오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해온 직원들을 잊지 않아야 두 회사가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