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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뉴스AS]‘통합 항공사’ 운수권 재분배하면 장거리 노선 외국에 빼앗긴다고?

등록 2022-01-04 10:53수정 2022-01-05 02:36

인천~미국노선은 완전경쟁 체제
인천~유럽은 국가간 운행횟수 정해져
타국 이전 못하고 자국 항공사 배분
국내 LCC 장거리 수용능력 없지만
유럽~인천 노선 승객 많지 않아
외국 항공사 그동안 경쟁 안나서
인천공항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인천공항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을 조건부로 승인하기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대한항공 등 일각에서 저비용항공사(LCC)의 수용 능력 부재를 이유로 ‘장거리’ 노선을 외국 항공사에 내어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내 엘시시에 장거리 운수권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고, ‘승인 조건’에 따라 회수 뒤 재분배되는 운수권은 외항사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인데, 가능성을 두고 물밑 공방까지 벌어지는 모습이다.

4일 항공업계 관계자와 국토교통부 정책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통합 항공사의 운수권과 슬롯이 회수 뒤 재분배되는 경우, 외항사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은 슬롯이다. 슬롯은 비행기가 승객을 태우기 위해 공항 시설을 점유하는 시·공간을 말한다. 보통은 시간적 개념으로 사용된다. 가령 11월13일 오후 3시에 비행기가 출발하기로 돼 있다면, 항공사가 그 시간대의 슬롯을 확보한 것이라고 한다.

항공사는 이렇게 확보된 슬롯과 비행기를 운항할 수 있는 권리(운수권)을 가지고 영업을 한다. 두 권리의 개념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하나처럼 작동한다. 운수권은 있으나 슬롯이 없다거나, 슬롯은 있지만 운수권이 없으면, 항공 영업이 불가능해진다.

인천~미국은 자유화 노선으로 완전경쟁 체제라 운수권 개념이 없다. 인천~유럽 등 비자유화 노선(구주 노선)의 경우에도 운수권은 외항사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국가 간 상호 합의로 운항 횟수를 정해놓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련된 운수권은 다른 국가로 이전되지 않고 해당 국적 항공사에만 배분된다. 따라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외항사에 운수권을 내어준다’라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다만, 슬롯은 다르다. 외항사가 확보해둔(사용하지 않던) 운수권을 토대로 상대 국가 공항 운영사 측에 회수된 슬롯 사용을 요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천~파리 노선 운항이 하루에 두 번(오전 6시와 오후 6시) 있다고 가정한 상황에서 통합 항공사가 정부의 운수권 재분배 명령에 따라 그중 오후 6시 슬롯을 반납했다고 하자. 이 경우 해당 노선 운수권을 갖고 있던 외항사가 오후 6시 슬롯 사용을 요청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운수권이 넘어가진 않았으나 실제로는 운수권이 외항사로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운수권이 넘어간다’ 주장의 실체를 따져보면 이렇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꽤 까다로운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통합 항공사의 운수권이 회수 뒤 재분배된다면, 이는 국내 항공사에 우선 주어진다. 운수권을 새로 확보한 항공사가 슬롯 점유 권한도 먼저 행사할 수 있게 돼 있다. 외항사가 슬롯을 요구하는 상황이 나타나려면, 먼저 운수권을 재분배받은 항공사가 규칙 위반 등으로 운수권이 박탈되며 슬롯 점유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야 하고, 외항사가 비어진 슬롯을 사업적으로 원해야 한다. 그래야 ‘외항사로 운수권이 넘어간다’는 주장이 완성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국내 엘시시들은 그동안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통합 승인 시 강력한 인가 조건을 달아야 한다고 공정위에 물밑 요구를 해왔다. 관련 자료를 적극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은 중·단거리는 수용 가능하지만, 장거리 노선은 수용 능력이 없는 게 사실이다. 미주와 구주 노선은 현재 엘시시가 보유한 항공기로는 운항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통합 항공사로부터 회수된 운수권을 국내 엘시시가 가져가더라도 다시 회수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고 해도 외항사가 반납된 슬롯을 가져갈 가능성은 적다. 사업적으로 이를 원하는 외항사가 나오기 어려워서다. 그동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해당 노선을 독과점해온 게 이를 반증한다.

구주 노선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사실상 독과점해왔다. 외항사들이 경쟁에 나서지 않아서다. 구주 노선에선 한국 출발 일정의 여객 수요는 많으나 반대 경우는 많지 않다. 유럽에서 아시아 쪽으로 향하는 노선이 워낙 다양해서다. 유럽 국적 항공사 쪽에선 유럽~인천 노선은 사업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의 운수권을 확보한 일부 외항사가 운수권을 전부 사용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 당국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애초에 우리나라의 장거리 노선에선 국내에서 국외로 나가는 승객 비율이 높다”며 “공정위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장거리 노선들을 외항사들이 사업적으로 원했다면, 그동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해당 노선 점유율이 높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어떤 제도적 도움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해당 노선을 독과점해온 게 아니라 외국 항공사들이 경쟁에 나서지 않아 만들어진 독과점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앞으로 통합 항공사의 운수권이 재분배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외항사들이 슬롯을 요청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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