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국내 앱 시장에서 독과점 남용 행위를 했다가 적발돼 올해 4월 과징금 421억원을 부과받았다. 연합뉴스
“거래 상대방에게 빨대를 꽂고 착취하느냐, 경쟁자를 죽여버리느냐의 차이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9일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가칭)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많은 언론은 “공정위가 거대 플랫폼 `갑질'을 막기 위한 법을 추진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미리 지정하고, 이들의 자사우대·끼워 팔기·멀티호밍 제한·최혜대우 요구 등 네 가지 반칙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것이 이 법안의 뼈대입니다.
정작 공정위는 이들 행위에 대해 ‘갑질’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독과점 남용 행위’로 부릅니다. 갑질과 독과점 남용 행위의 차이를 “빨대를 꽂느냐, 죽여버리느냐의 차이”라고 공정위 조사관은 설명합니다.
갑질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지닌 ‘갑’이 더 많은 수익을 뽑아내기 위해 ‘을’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등의 행위를 말합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과도한 로열티를 요구하거나 원청이 하청 단가를 후려치는 게 여기에 속합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주최로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남근 재벌개혁경제민주화네트워크 정책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온라인 플랫폼 거래시장의 공정화와 독점 규제를 위한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독과점 남용 행위의 목표는 경쟁사업자의 시장 퇴출입니다. 독과점 지위를 차지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거죠. 공정한 경쟁을 통해 기술이 발전하고 소비자 후생이 증가하는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그러하기에 공정위는 갑질보다 독과점 남용 행위에 더 강한 처벌을 합니다.
최근 결론이 난 씨제이(CJ)올리브영
사건을 보면 독과점 남용 행위와 갑질 행위에 대한 제재 수위가 어떻게 다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공정위는 지난 7일 씨제이올리브영의 갑질 행위에 대해 18억9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때 씨제이올리브영의 ‘이비’(독점 브랜드·Exclusive Brand) 정책이 독과점 남용행위인지 아닌지도 판단했습니다. 결국 독과점 남용 행위가 아니라고 결론이 났지만, 만약 다른 결론이 났다면 씨제이올리브영이 내야 할 과징금은 수천억원에 이를 수도 있었습니다.
플랫폼 시장에서는 구글의 ‘국내 앱 시장’ 독과점 남용 행위가 대표적입니다. 이미 ‘구글 플레이’가 국내 앱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던 2016년, 국내 통신 3사가 네이버와 손잡고 ‘원스토어’를 출시하며 도전장을 내밀자 구글은 원스토어 죽이기에 나섭니다. 국내 게임사들이 원스토어에 게임을 출시 못 하도록 막은 것이죠. 원스토어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기 전에 싹을 잘려버리려 한 겁니다. 구글 쪽 내부 자료에는 “원스토어를 ‘마이너 루저 리그’로 만들어야”한다는 표현까지 적혀있었습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플랫폼 독과점 폐해를 줄일 수 있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 제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기존 공정거래법으로 독과점 남용 행위를 규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 공정위가 대형 플랫폼의 독과점 남용행위를 제재할 때 ‘뒷북 제재’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플랫폼은 공급자·수요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효과와 데이터 집중으로 인한 쏠림 효과 등으로 한 사업자가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카카오톡(메신저)·배달의민족(배달앱), 카카오티(택시앱) 모두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한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공정위가 독과점 남용 행위를 제재하는 건 반칙 행위를 벌주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반칙 행위를 통한 시장 독과점화를 막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 시장은 제재 결정이 나면 이미 독과점이 공고해져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립니다. 공정위의 계획대로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이 제정되면 플랫폼의 독과점 행위가 제대로 근절될지 기대됩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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