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풍력발전단지,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무창리 지에스(GS)풍력발전단지, 전라북도 부안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모습.
“문재인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강조했지만 세부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윤석열 정부가 이를 잘 해결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한 에너지 전문가가 한 말이다. 새 정부가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강조할 것은 예고됐지만, 재생에너지 비중 역시 늘릴 수밖에 없다.
지난달 3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보면, 2030년 기준 전원별 목표 중 신재생에너지는 21.5%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확정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정한 30.2%보다는 대폭 축소됐지만, 2021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비중 7.5%와 비교하면 “재생에너지는 늘려야 한다”는 세계적 흐름마저 거스른 것은 아니란 분석이다.
<한겨레>가 기후솔루션·에너지전환포럼의 제안으로 지난달 24~26일 전북 부안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전남 영광과 경북 영양의 육상풍력발전단지 등을 취재한 결과, 한국해상풍력, 두산에너빌리티, 지에스(GS)풍력발전 등 사업자들이 꼽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과제는 ‘경제성’ 확보였다. 이들 사업자는 수년 이상 걸리는 인·허가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풍력발전 보급촉진 특별법안’(원스톱 샵 법) 국회 통과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사회적 수용성을 늘리기 위해, 적합한 입지 선정을 위한 과학적 근거 마련과 공익성을 높인 주민 이익 공유 방식도 요구됐다.
보통 한국 바람은 외국 바람보다 세기가 약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평균 풍속 7m/s 기준으로 가장 경제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기 개발을 고심하며, 국내 최대 8㎿ 규모의 풍력발전기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초기 모델은 3~4㎿ 수준이었다.
김성태 두산에너빌리티 수석풍력전기 제어기술개발팀장은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터빈 용량이 커지고 날개 길이가 길어지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그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한국도 더 큰 풍력발전기가 필요할 수 있지만, 현재 (실증 진행 중인 풍력발전기가) 한국 환경에 맞는 제품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회사 진종욱 상무는 “(풍력발전 사업은) 터빈과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기자재 국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남해해상풍력실증단지의 해상변전소. 아시아 최초로 해상에 건설됐다.
전북 부안·고창 군민이 사용하는 총 전기 사용량의 14%(2020년 기준)를 책임지는 서남해풍력실증단지를 운영하는 한국해상풍력의 여영섭 대표이사도 ‘경제성’이 가장 큰 고민이다. 2011년 이후 사업 기간만 9년이 걸렸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한 투자비가 2조4천억원으로 불어난 것이 부담이다. 여 대표는 “국내 업체 제품을 활용하면서 경제성을 확보하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며 “사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자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국회에서 원스톱 샵 법 등을 제정하면 기간 단축에 도움이 돼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풍력발전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지만 과제는 산적해 있다.
육상풍력발전보다 발전량이 4배 이상 많은 해상풍력발전이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이지만, 한국은 바다 생태·환경을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다. 류종성 안양대 해양바이오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해양공간정보를 자세히 담은 지도가 있지만, 한국은 지도 자체가 없다”며 “(사업 추진 이전에) 해상풍력의 환경영향평가를 엄격히 실시해야 수용성·지속가능성도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육상풍력발전의 경우도 환경 파괴 영향을 계량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승현 국립생태원 환경영향평가 검토 담당 전임연구원은 “풍력발전이 생태와 자연에 미치는 장단기 영향을 정량화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어느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백두대간의 끝인 경북 영양군의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 18기 이상을 운영하고 인근에 두번째 풍력발전단지를 건설 중인 지에스풍력발전은 지난해 멸종위기종 산양의 배설물이 발견되자, 건설 예정이었던 3기의 풍력발전기 건설을 포기하는 한편 생태모니터링을 계속 하고 있다.
기초 자료 부족과 주민 설득에 시일이 소요되는 가운데 가짜 풍력발전 사업자들이 나타난 것도 ‘난제’로 작용하고 있다. 풍력발전사업 허가가 난 전국의 사업장 중에는 ‘알박기’만 한 채 보상을 기다리는 가짜 사업장도 숨어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특히 좁은 바다에서 풍력발전시설이 건설되면 어획 활동을 멈춰야 하기 때문에 수협중앙회는 ‘국가 주도 발굴을 통해 경제성 있고 반대가 심하지 않은 진짜 사업장만 남기고 가짜 사업장은 정리하고 어민들도 민간협의회에 참여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최덕환 한국풍력산업협회 대외협력팀장은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 사업의 불확실성과 비용을 높이고, 갈등은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풍력발전단지 전경. 두산에너빌리티 등 풍력발전 기업들이 한국 바람에 적합한 풍력발전 상용화를 위해 실증 시험을 진행하는 곳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항상 논란이 되어온 지역 주민과의 갈등 해결은 시간이 걸려도 꼼꼼히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되는 추세이다. 다만, 지역 주민들에게 수익 상품 판매처럼 접근해 일단 ‘묻지마 찬성’을 유도하는 사업비 조달 방식은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현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연구원은 “덴마크에서 시작한 주민참여제도(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민이 일정 부분 투자해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의 상생 의의는 유효하다. 일종의 보상금 명목이 아닌, 지역 사회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기금 조성이나 기부 등 다양한 방식의 이익 공유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안·영광·영양/글·사진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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