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꿈은 초대형 항공사 만들기일까. 대한항공 지키기일까.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 기업 결합을 위해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매각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기업 결합을 심사하는 국외 경쟁당국의 승인을 얻기 위해 한 해 매출이 3조원에 이르는 사업을 팔겠다는 것이다. 항공업계에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다걸기’엔 대한항공 경영권 방어 포석이 있다는 분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은 26일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포기설에 대해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시정조처안을 확정해 제출할 계획으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제출하는 기업결합 시정조처안에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부 전체 매각과 일부 노선 포기 등이 담겼다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셈이다.
항공업계에선 대한항공이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조원태 회장이 지난 6월 블룸버그티브이(TV)와의 인터뷰에서 “무엇을 포기하든 (기업결합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한 만큼, 유럽연합 요구를 수용하는 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5월 유럽과 한국 간 화물 운송 서비스 경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기업결합에 부정적인 중간심사 결과를 냈다.
화물은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사업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화물 사업 매출은 3조원에 가깝다. 올해 반기 기준 화물 사업 실적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24%)은 국제여객(62%) 다음으로 높다. 대한항공은 영국·중국 등 각국 경쟁당국 심사에서 상당수의 슬롯(항공사에 배정되는 항공기 출발·도착시각)을 반납한 데 이어, 이같은 알짜 사업마저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기업결합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방어 역사와 떼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조 회장은 지난 2020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하며 산업은행을 ‘백기사’로 끌어들였다. 대한항공을 계열사로 둔 한진칼의 경영권을 두고 당시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3자 연합)과 지분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지원을 위해 한진칼에 8천억원을 투자하며 강력한 우호 주주(현재 지분 10.58%)로 등장한 것이다. 3자 연합은 산업은행의 등장에 경영권 다툼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기업결합이 무산되면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변수로 바뀐다. 8천억원에 달하는 지분을 산업은행이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원태 회장으로선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메가 케리어(초대형 항공사)’로 가기 위한 능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시험대인 셈이다. 조 회장 쪽은 한진칼 주식의 19.79%만 가지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산업은행 지분이 빠지면 누군가 메꿔야 하는데 경영권 위협세력이 들어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한항공은 합병에 최선을 다했다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유럽연합이 시정안을 받아들이면 미국도 그에 준하는 요구를 할 터라 아시아나항공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될 수 있다”고 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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