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익명으로 참여하는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공급 대란이 나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에도 ‘직원연대’가 관리하는 익명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 만들어졌다. 앞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세례 갑질’에 분노해 ‘대한항공 직원연대’ 단체 카톡방을 만들고, 총수일가의 갑질·밀수 등 불법·탈법 행위를 집중 제보해온 것을 본따서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3일 밤 ‘침묵하지 말자’란 이름의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을 개설했다. 밤 사이 별도의 ‘링크’를 전해 받아 해당 카톡방에 가입한 인원이 4일 아침에 이미 단체 카톡방 한도 1천명을 넘어 두번째 대화방까지 열렸다. 직원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직무를 공항(지상직, 하청업체 케이에이(KA)직원), 운항, 캐빈, 정비, 케터(케이터링) 등으로 구분해 대화명 앞에 표기한 뒤 ‘기내식 대란’ 한가운데서 겪고 있는 각자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일례로, 회사에서 기내식을 제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항공요금 일부를 환불하는 것이 아닌, 기내 면세품 구매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쿠폰(TCV)을 대량 배포하는 것은 현장의 혼잡함과 승무원들의 노동 강도를 과도하게 키우는 위험한 결정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한 직원은 “비행기를 자주 타지 않으니 (승객들은 티씨브이를) 바로 사용해야 이득”이라며 “티씨브이 남발로 1∼2시간짜리 비행에서 100∼200명의 승객을 상대해야 한다. 회사에서 안전 운항에 피해가 갈 것을 알고서도 나 몰라라 해버리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기내식 대란 사태를 부른 경영진을 규탄하는 말도 쏟아지고 있다. 직원들은 광화문에서 오는 주말 촛불집회를 열자는 의견도 모아가고 있다. 2일 숨진 기내식 공급 협력업체 대표 추모를 위해 국화를 들고 집회에 참석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승무원에게 듣기 힘든 욕설을 끝없이 내뱉는 한 남성 동영상도 올라왔다. 동영상을 보면, 공항 탑승구 앞에서 한 중년 남성이 아시아나항공 쪽 지상직 직원들을 향해 “개같은 X들, XX년들”이라며 “미안한 줄 알아 이 개같은 X들아!”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19초 분량의 영상에서 이 남성은 ‘개 같은 X’ 또는 이와 비슷한 험한 욕설을 7차례나 내뱉는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는 한 승무원이 “오늘 승객한테 XX년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죽고 싶어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 직원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지만, 최근 벌어진 사태는 가장 기본적인 회사에 대한 자존심마저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우리는 하청 쥐어짜기 갑질 회사를 바라지 않는다. 고객이 안전하고 노동자의 삶이 보장된 아시아나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