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수출 막힌 현대차= 8일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에 투싼 등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발 공급·수요 동시 충격으로 주요 산업마다 생산이 중단되거나 매출이 크게 줄어드는 등 고통스런 시기를 맞고 있다. 이에 자동차·석유·철강 등 기간산업 재벌 대기업들이 모인 업종별 단체는 저마다 ‘대정부 코로나19 특단대책’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각 협회는 총선이 끝나는대로 요구안을 정부에 정식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당면한 유동성 위기를 벗어날 방안 이외에도 규제 유예나 세금 감면 등 코로나 충격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기업들이 ‘업계 숙원’을 푸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완성차·부품업계를 회원사로 둔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이달부터 7월까지 4개월간 수요 절벽 및 공급망 차질이 지속될 경우 총 32조8천억원의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고 추산한 ‘업계 건의서’를 최근 채택했다. 건의서는 △완성차업계 유동성 공급(7조원) △자동차 수출금융지원(15조2천억원) △국책금융기관의 기업어음 매입(7조2천억원) △신용보증기금의 프라이머리 시비오(P-CBO·회사채 담보부증권) 매입(1조원)에다가 개별소비세 감면 및 법인세 납부 유예까지 담고 있다. 업계는 올해 예상매출액(완성차 170조원, 부품업계 80조원)의 약 30%를 ‘4개월간 매출 감소폭’으로 추산했다.
건의문엔 특히 휴업수당(인건비의 70%) 지급 부담을 덜기 위해 휴업시 개별 휴가·휴일로 대체 처리하도록 ‘정부가 노동조합 쪽에 권고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될 예정이다. 이밖에 △특별연장근로 대폭 허용 등 노동규제 한시적 배제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자동차 탄소배출기준 유예 등도 담긴다. 연합회 쪽은 “정부가 나서 휴가·휴일 대체를 권고해주면 회사가 노조와 협의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 정유사들을 주요 회원사로 둔 대한석유협회는 업계가 끊임없이 요구해온 수입부과금 유예 카드를 꺼내들었다. 긴급 유동성 지원보다는 ‘원가경쟁력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업계는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정제마진 악화를 이유로 들면서 △석유 수입관세(실행세율 3%) 및 수입부과금(2018년 1조8천억원) 징수 유예 △투자세액공제율 상향 △개별소비세(벙커C유 1리터당 17원) 조건부 면제 등을 요구사항으로 내세운다. 석유수입부과금의 경우, 원유·석유제품은 1ℓ당 16원, 액화천연가스(LNG)는 1t당 2만4242원(발전용은 1t당 3800원)이 부과된다. 개별소비세 면제는 국내 항공기 운항 중단에 따른 항공유 수요 급감을 강조한다. 안전·환경시설 투자세액공제율(안전시설 1%, 환경시설 3%)도 2%포인트가량씩 더 늘려달라는 인센티브 제공도 요청하고 있는데, 이는 국내 제조 대기업들이 그동안 당국에 공통적으로 요구해온 사항이다. 협회 쪽은 “관련 부처와 협의해야 하는 세부 사항이 많은 터라 건의문을 공개하지 않고 당국과 만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철강 업계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한국철강협회는 탄소배출권과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같은 ‘환경·에너지비용’ 규제 해소를 필두로 한 건의사항을 다듬는 중이다. 14일 현재 탄소배출권가격은 1t당 4만500원(한국거래소)으로, 업계는 “탄소배출 감축 목표가 너무 높게 설정돼 산업경쟁력 자체를 위협한다”고 줄곧 호소해왔다. 산업용 전력요금의 경우 한국전력이 인상을 검토 중인 터라, 업계가 ‘인상 저지 및 동결’을 얻어내려는 의도로 아예 인하 주장을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대기업이 중심이 된 업종별 단체의 발빠른 행보는 정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지원할 명확하고 일관된 원칙과 기준, 조건과 규율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기업들이 먼저 ‘기선 제압’에 나선 측면도 강하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이번 위기는 수요뿐 아니라 생산에 충격이 왔다는 점에서 기업활동을 위한 당장의 지원은 필요하다”면서도 “노동시간 규제 등 이번 정부의 성과를 되돌리겠다는 특정 산업의 요구까지 수용해주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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