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이 열린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15일 법무부 통보로 삼성전자 재직 여부가 불투명해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가 취업 제한에 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상속 진행 중인 고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받을 삼성생명 지분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되는 탓이다. 삼성생명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서 핵심 고리를 하는 계열사인 터라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불씨로 작용할 공산이 있다.
22일 <한겨레> 취재 결과, 이 부회장이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사기 사건 관련 금고 1년 이상의 처분을 받으면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중 10%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을 쓸 수 없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금융관련법 위반에 따라 받은 금고 이상 처분을 금융회사 최대주주의 결격 사유로 정하고 있어서다.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현재 부친 고 이건희 회장(20.76%)으로, 이 부회장은 그의 지분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이 부회장이 전량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의결권을 쓸 수 없는 10% 초과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이다. 삼성의 핵심 출자고리는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삼성생명이란 ‘중간 회사’를 통해 이뤄지는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 부친의 지분을 상속받은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에 대한 대주주 자격을 잃게 되면 이와 같은 지배구조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 최대주주 자격을 상실하면 현재 2대 주주인 삼성물산(19.34%)이 삼성생명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물론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이 부회장이 아닌 여동생(부진·서현)이나 어머니(홍라희씨)가 전량 상속받으면 대주주 결격 문제는 불거지지 않는다. 다만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은 크게 훼손되는 터라 재계에선 이런 상속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이 부회장이 마주한 이런 난제는 국회의 입법 지연 탓에 불거지는 시점이 뒤로 늦춰진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금융 분야 경제민주화 3법 중 하나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20대 국회에서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한 뒤 21대 국회 개원 즉시 재발의한 바 있다. 이 개정안은 금융회사 최대주주 결격 범위를 금융관련법 위반 뿐만 아니라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가법)위반까지 넓혀 놨다. 20대 국회 때 개정됐다면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 농단 사건에 따라 징역형을 받으면서 취업 제한 뿐만 아니라 삼성생명의 보유 지분(잠정)에 대한 의결권 제약을 받아야 했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0대 국회에선 인터넷은행특별법 등 다른 우선 처리 법안들에 밀려 국회 상임위원회(정무위원회) 차원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며 “(21대 국회 들어) 정부가 재발의한만큼 입법을 적극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자본시장법 위반이 확정돼도 10%의 의결권은 행사할 수 있겠지만 기관투자자 등 주주들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이 부회장의) 경영 참여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삼성이 출자구조에서 삼성생명을 빼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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