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완화 움직임 논란
정부가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해 총부채상환비율(DTI·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을 두고 ‘가계부채를 늘려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려는 시도’라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20일 디티아이 완화 여부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21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청와대에서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금융점검회의를 열고 디티아이 완화 문제 등을 논의했으나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서 관련 보고를 받고 “각 부처 간에도 의견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충분히 논의하라”고 지시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정부는 22일로 예정된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 이전에 한 차례 더 회의를 열어 이견을 조율할 방침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디티아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은 정치권,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논란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는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겨 지금도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지금 우리의 가계대출 규모가 740조원에 이르고 은행권 가계대출의 65%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라며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금융기관이 부실화되고,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추가 이자부담이 1조25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층과 중산·서민층에게 가격이 떨어질 주택을 빚내서 구입하라고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모르핀(마약)이 장기적으로 몸에 나쁜 건 알지만, 모르핀 주사를 안 놓으면 당장 고통으로 죽게 생겼다면 놓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재 디티아이 기준은 지역에 따라 40~50%로 건설업계 요구대로 이를 상향조정하면 집을 사는 사람이 대출받을 수 있는 액수가 늘어난다.
그나마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시장에 다시 투기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디티아이 완화에 대해서는 위축된 거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견해와 정부가 본격적인 집값 부양에 나섰다는 신호를 줘서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둘 다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디티아이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일정 소득이 없는 강남의 투기꾼들”이라며 “솔직히 디티아이를 완화하자는 속내는 투기꾼들을 끌어들여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과연 디티아이를 푼다고 부동산 침체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도 나온다. 최근 부동산거래 실종 원인은, 결국 ‘못 사는 거냐’(수요자들이 대출규제 때문에 의지가 있어도 살 수 없는 상황)와 ‘안 사는 거냐’(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사려고 하지 않는 상황)로 나눠볼 수 있다. 이용만 한성대 교수(부동산학)는 “지금 시장에 어느 쪽 사람들이 더 많은지는 단언하기 힘들다”며 “만약 후자가 더 많다면 디티아이를 완화한다 해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도 “‘부동산 대세하락론’ 확산, 금리 인상, 올해 입주물량 급증, 경기침체로 인한 소득 하락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수요자들이 주택 구입을 꺼리고 있다”며 “소득이 늘고 집값이 더 떨어져서 새로운 균형이 생겨야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선희 박영률 최혜정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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