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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출산 다 미뤘는데 “집마저 비정규…정착해 살고 싶다”

등록 2020-07-29 22:10수정 2020-07-30 10:47

임대차 3법이 절실한 사람들

국제통계, 한국 ‘임대인 친화적’ 규정
전국 44%·서울 51% ‘무주택 가구’

2년마다 계약 돌아오는 전세 난민
아이 꿈 못꾸는데 청약선 탈락만
행복주택은 공공 대출도 안 되고
장기공공임대 가려 혼인신고 못해
치솟는 보증금에 재계약은 ‘공포’

국제통계(Global Property Guide)를 보면 독일, 프랑스, 스웨덴, 미국은 임차인 친화적인(pro-tenant) 국가이고 한국은 영국, 홍콩 등과 함께 임대인 친화적인(pro-landlord) 국가다.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는 임대차 3법 추진 과정에서 임대인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부정적인 보도가 쏟아지는 배경이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체 1997만9천가구 중 43.8%인 874만5천가구는 무주택 가구다. 집값이 비싼 서울의 무주택 비중(50.9%)은 더 높아서 서울 2가구 중 1가구는 세입자로 산다. 소득과 계층을 막론하고 임대차 3법이 하루빨리 시행되기를 기다리는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29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임대차3법 개정을 촉구하는 세입자 및 113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국회에 모여 7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임대차3법 개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9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임대차3법 개정을 촉구하는 세입자 및 113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국회에 모여 7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임대차3법 개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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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언제 쫓겨날지 몰라 출산 미룬 ㄱ씨

서울 용산구의 재개발 예정지 낡은 빌라에 전세로 사는 ㄱ씨는 정부의 공공주택 정책은 포기한 상태다. “행복주택(청년 및 신혼부부 대상 공공임대주택)은 월 임대료에 관리비까지 더하니 우리 소득으로는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맞벌이를 하지만 부부 소득을 합해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평균 100%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 매달 50만원씩 내야 하는 임대료 부담이 크게 다가왔다. 같은 돈이면 집을 사서 대출금을 갚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서울 마곡지구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청약을 넣었지만, 자녀가 없는 탓에 예비번호 1500번을 받았다고 했다.

민간 임대 시장, 즉 전셋집이 ㄱ씨의 유일한 선택지이지만, 2년마다 계약기간이 돌아오는 전셋집에서 출산을 계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ㄱ씨의 판단이다. 두 달 전 보증금 인상 없이 재계약을 하는 데 성공했지만, 2년 뒤엔 ‘주인 할머니’가 보증금을 크게 올릴 것이라고 불안해했다. “2년 동안 눈치를 진짜 많이 봤어요. 별 탈 없이 조용히 사니까 재계약해준 것 같은데, 2년 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지쳐요. 보증금이 갑자기 뛰면 더 좁은 데로 이사 갈 수 있으니, 가구도 잘 못 사요. 이런 상황에서 출산을 어떻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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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6년 임대 찾을 때까지 결혼 미룬 ㄴ씨

ㄴ(30)씨는 신혼부부 행복주택에 당첨됐지만 올해 9월 입주를 앞두고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보증금 1억5천만원을 신용대출로 마련해 이자를 갚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행복주택은 그 자체로 혜택이라 1~2% 저리로 받을 수 있는 공공 대출은 안 해주거든요.” 행복주택 입주를 포기하면서 혼인신고도 자연스레 미뤄졌다. 2년마다 이사 다녀야 하는 민간 전셋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할 경우 출산을 비롯한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면 그때마다 고정비용으로 100만원이 넘는 돈이 이사비용으로 깨지잖아요. 주거에 있어서도 비정규직 신분으로 계속 살게 되는 건 싫어요.” ㄴ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 등 행복주택보다 저렴하면서 임대기간은 6년 이상으로 긴 공공임대주택이 나올 때까지 혼인신고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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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치솟는 전셋값이 ‘공포’가 된 ㄷ씨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도 주거불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서울 송파구 집값 및 전셋값 폭등을 주도하고 있는 리센츠에서 2013년부터 전세로 산 ㄷ씨는 4년 동안 전세보증금을 80%나 올려줘야 했다. 5억5천만원으로 시작한 전세보증금은 2년 만에 2억, 또 2년 만에 2억이 올라 9억5천만원을 찍었다. ㄷ씨는 강동구에 있던 아파트를 처분해 전세보증금을 올려주다가, 2017년에 둔촌주공 분양권을 샀다. 리센츠 전세보증금을 빼 매매에 보태고 인근 헬리오시티에 반전세로 들어갔다. “그때 막 입주하던 때라 시세가 좀 낮았어요. 집주인들 불만이 어마어마했죠. 전월세 가격이 올라야 집값도 빨리 올라간다고요.” 둔촌주공의 예정 입주 시기는 2023년이지만, 조합장이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느라 언제 입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임대차 3법이 없는 상황에서 6개월 이후 재계약을 맞이하는 일은 ㄷ씨에게 ‘공포’다. “지난해 2월에 들어올 때 전세 시세가 6억이었는데 요즘 보니 9억5천만원에 나온 전세도 있더라고요. 반전세로 있는데 월세가 얼마나 오를지 모르겠어요. 임대차 3법이 빨리 시행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두렵네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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