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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도 임대료 급등…상가임대차보호법은 그림의 떡

등록 2020-11-04 17:28수정 2020-11-04 22:27

임대료 증액 제한, 차임감액청구권 등
환산보증금 9억원 초과 상가 적용 제외
“주택임대차보호법처럼 예외두지 말아야”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중소상인·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로 인해 중소상인·자영업자·상가임차인들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에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상가 임대료 조정, 임차인 지원 대책을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중소상인·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로 인해 중소상인·자영업자·상가임차인들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에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상가 임대료 조정, 임차인 지원 대책을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임대료 5% 증액 제한 등 임대료와 관련해 상가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지 않는 환산보증금 9억원 초과 고액 임차 상인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급등하는 임대료 부담에 울상을 짓고 있다.

서울 광화문의 대형 오피스 건물 상가에서 2015년부터 음식점을 운영해 온 ㄱ대표는 최근 재계약을 앞두고 월 임대료를 인상해달라는 ‘건물주’의 통보를 받았다. 건물주는 국내 건설 대기업 ㄴ사다. ㄴ사는 현재 1349만원(관리비 809만원)인 임대료를 2200만원(1년차)~2400만원(3년차)까지 올려달라고 했다. 보증금도 기존 1억2천만원에서 1억원을 올려 2억2천만원을 요구했다. 연 4% 인상되는 관리비를 더하면 3년 차에 건물주에게 내야하는 금액이 3300만원에 달한다.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한 직원 20여명의 인건비만 5천여만원으로 식재료 구입 등 부대비용 등을 고려하면 한달 매출이 1억이 넘어야 버틸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했다는 데 있다. ㄱ대표는 “상반기 70% 정도 매출이 줄었다. 대출 받아 임대료 내고 직원들 급여를 줬다”며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언제 또 유행이 올지 모르는데 코로나 위기 전보다 많은 임대료를 부담하는 것은 무리”라고 한숨을 쉬었다.

같은 건물 상가에 있던 프랜차이즈 카페는 임대료 인상 요구에 결국 퇴거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ㄴ사가 요구하는 만큼 임대료를 인상하게 되면 저희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폐점했다”며 “초기 매장 공사비용이나 폐점하면서 원상복구에 든 비용 등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상임법)은 계약 갱신을 할 때 임대료를 5% 이상 증액할 수 없도록 하지만, ㄱ대표의 음식점을 비롯한 ㄴ사 건물의 대다수 상가는 이 보호 조항의 예외다.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합한 ‘환산보증금’이 9억원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상임법은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 9억원을 초과하는 ‘고액 임차인’을 5% 증액 제한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지난 9월 통과된 상임법을 통해 보장된 ‘차임감액청구권’도 9억원 초과 고액 임차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임대료가 신규계약 수준으로 올랐으니, 계약도 새 계약으로 쳐서 10년 보장받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10년이면 코로나도 회복되고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니까요.” 신규계약 수준의 임대료 급등에 2018년 9월 개정 상임법에 따라 신규계약에 적용되는 10년 계약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ㄱ대표의 기대는 결국 물거품이 됐다. ㄴ사가 이번 계약이 최초 계약일을 2015년으로 하는 ‘연장계약’이라고 명시해 새 계약이 아니라 일종의 갱신계약이 됐기 때문이다. 2020년을 계약연도로 할 경우 계약기간 10년을 보장하는 상임법에 따라 2030년까지 계약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임대료 증액 제한도, 계약 기간도 보장받을 수 없는 ㄱ대표에게 상가임대차보호법(상임법)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상임법에서 상가임차인소송센터의 김남주 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갱신요구권이 10년까지 보장되어도 차임 증액에 대한 제한이 없으면 사실상 임대료 증액 때문에 임차인이 나갈 수밖에 없다”며 “9억원 초과 고액 임차인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사실상 ‘사면초가’인 상태에서도 재계약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초기 투자금 때문이다. ㄱ대표는 “인테리어 등으로 7억원 가량 투자를 했는데 투자금액도 회수 못했다”며 “결국 이렇게 끌려다녀야 하는 건가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5년 첫 계약 때 ㄱ대표는 ㄴ사와 ‘권리금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이번 재계약 때도 이 조항은 그대로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명동 종로 이태원 강남과 같은 주요 상권 상가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도 환산보증금이 9억원을 넘는 곳이 많다”며 “주택은 고액 전세라고 해서 권리를 박탈하는 게 없다. 9억원 초과 상가의 임대인은 대기업이나 기업형 임대사업자일 가능성이 크고 이들에 견줘 약자인 임차인은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ㄴ사는 “그 자리에 계속 영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규 계약이 아니라 갱신 계약(연장계약)이 맞는다”며 “5년 전 개장 초기에 할인된 임대료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이번 임대료 인상도 주변 시세나 입주해 있는 다른 상가들에 견줘서 과도하지 않다”고 밝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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