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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중기·스타트업

[현장에서] 중소기업 협동조합 임원의 뒷맛 씁쓸한 전화

등록 2021-06-10 15:51수정 2021-06-10 16:21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사장님 인터뷰 기사에서 대기업 이름을 빼줄 수 없을까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전선 업종 기업 단체인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임원이 전화를 걸어 한 말이다. 앞서 <한겨레>는 홍성규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인터뷰(6월8일치 18면 ‘대기업들이 원자잿값 올리고, 납품가 후려치고 “중소기업은 중간에 끼어 죽어납니다”’)하며 전선 제조 중소기업들이 거래하는 대기업 몇 곳의 이름을 거론했는데, 이를 빼달라는 것이다.

이 임원에게 ‘인터뷰 기사에 담긴 대기업들은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안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사장 멘트가 아니라 독자들이 기사를 읽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기자가 따로 취재해서 담은 것인데?’라고 하자, “해당 대기업들도 조합 회원사이기도 하고, 이름을 빼라고 요구한다…하여튼 기사가 나간 지 며칠 됐으니 볼 사람 다 보지 않았겠냐”고 통사정하다시피 했다.

<한겨레>는 취재보도준칙에 따라 기사를 수정할 때도 엄격한 잣대와 절차를 따른다며 일단 거절했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며 불편하다. 전선 업종 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원자재 공급 대기업들은 시도 때도 없이 가격 인상을 통보하고, 납품 대기업들은 원자잿값 인상 반영을 차일피일 미뤄 중간에 낀 중소기업들이 죽어나고 있다고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한 것인데, 납품 대기업들의 요구로 한 말을 도로 주워 담는 뒷모습이 아련해 보이기까지 해서다.

이 임원 전화가 처음도 아니다. 홍 이사장 인터뷰 기사가 신문에 나간 당일(6월8일) 협동조합의 또다른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납품단가조정협의 제도의 실효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뭐라 한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중소기업 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중소기업 눈높이에서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라고 하면서도, 그 말 때문에 불편한 처지로 몰린 사실을 감추지는 않았다.

중기중앙회는 10일 내놓은 ‘2021 KBIZ 신임 이사장 세미나’ 보도자료에서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위기를 점차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경영 애로 해소를 위해 업계 대표로서 신임 협동조합 이사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어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납품단가 현실화 등 중소기업 주요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대응 방안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협동조합 이사장이 언론에 대고 ‘쓴소리’를 했다고 면박을 주는 모습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동안 중소벤처기업부와 중기중앙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중소기업을 앞세우긴 하는데 진짜 중소기업 편을 들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행태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더욱 그렇다. 다른 부처 내지 대기업들의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본다. 권칠승 중기부 장관도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중소기업들도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바로잡히도록 중기부가 앞장서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게 국가 경제 발전에 더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그게 진정 가능할까요?”라고 되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 체질 개선을 앞세워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하고 ‘힘 있는’ 정치인들을 장관으로 임명해 힘을 실어줬다. 덕분에 중기부는 외형이 부쩍 커지고 예산 규모도 크게 늘었다. 반면 마인드(중소기업 눈높이에서 대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으려는 의지 등)는 여전히 중소기업청 수준을 못 벗어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홍성규 이사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편 가르고, 중소기업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것에 결단코 반대한다. 비록 지금은 중소기업이지만 모두 대기업을 꿈꾼다. 다만,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거래할 때 법을 지키도록 해 달라는 거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또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중기중앙회와 중기부까지도 중소기업들의 ‘법대로’ 요구를 ‘또 우는소리 하고, 또 떼쓴다’ 것으로 간주하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안타깝고, 불편하고, 아련하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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